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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GUE in STORYON: 사랑, 주진모

【VOGUE】 2012년 08월호

아담이 눈뜰 때
faces of actors -Part 3. 주진모
2012년 08월호
신이 에덴동산에서 첫 인간을 만들어‘생육하고 번성하라’하였으니, 그가 인류의 조상 아담이다. 주진모의 설화적인 외모에는 신이 배우를 창조했을 당시의 아우라가 있다. 너무도 진솔한 이‘순정 마초’의 만담에 귀를 기울여보자.
    블랙 시스루 셔츠는 디올 옴므(Dior Homme), 독특한 그레이 팬츠와 블랙 서스팬더는 장광효 카루소(Caruso), 반지는 스와로브스키(Swarovski).(왼쪽) 투명한 PVC 재킷은 질 샌더(Jil Sander).(오른쪽)

    【2011.11.01】marie claire 11월호

     

    주진모의 순정

    영화 속 주진모는 대개 세상이 두 쪽 나도 순정을 지킬 것 같은 남자를 연기한다. 배우 주진모 역시 그런 남자다.

    PREMIERE NO.67

    2010.09.29.WED | 16:25

    “사랑이 없으면 연기도 없다.” 배우 주진모는 진중하고 묵직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쌍화점>의 동성 간 사랑에 이 어 <무적자>에선 형제와의 사랑이다. 주진모는 정신없이 총을 난사하는 핏빛 누아르 속에서도, 여전히 사랑을 먹고 사 는 멜로 배우다.


    엘르(ELLE) 2009년 12월호

    쉐어 해피니스 Ⅳ
    Love actually is all around
    유엔 산하 기구인 세계식량계획(WFP) 홍보대사인 장동건이 스튜디오 한가득 친구들을 초대했다. 유자, 수수, 보리, 옥수수 등 익숙한 먹을거리들을 날것 그대로 마주한 스타들은 최초로 포토그래퍼로 변신한 장동건의 주문에 따라 아이처럼 가장 순수한 모습으로 변신했다. 그들이 말하는 지금 나를 가장 즐겁고 기분 좋게 하는 것들, 그리고 먹을 것에 관한 오래된 추억들.::장동건, 수애, 고준희, 김남길, 신민아, 차태현, 공형진, 한재석, 주진모, 사랑, 나눔, 기부, 엘르, 엣진, elle.co.kr::


    CINE 21 NO.353

    세월의 향기, 그의 향기. 배우 주진모의 향기

    얼마 전 이곳에 배우 조인성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주절거린 적이 있다. 영화 <쌍화점>의 표지와 인터뷰를 위한 사진이었는데 글을 쓰고 나서 사진들을 정리하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다. 그 영화엔 남자주연배우가 두 명이었고 난 그 중 한 명에 대해서만 얘기했다. 물론 인쇄매체를 위한 만남이었으니 이곳에 꼭 써야 한다는 법도 없고 또한 만났던 모든 배우를 다 소개하는 공간도 아니니 미안한 마음이 들 필요도 없지만 이유를 알 수은 없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혹시 그가 이곳에 들어왔다면 왠지 섭섭해 할 듯하다. 세상을 살면서 무엇보다 행복한 것이 마음이 편한 것이 최고라고 굳게 믿고 살아왔기에 이번에도 마음이 편해지려고 컴퓨터를 켠다.


    * 기사제공_씨네21/ 사진,글_손홍주 <씨네21> 사진기자
    * 구성_네이버영화
    세월의 향기, 그의 향기. 배우 주진모의 향기






    2008년 12월, 영화 <쌍화점>의 표지와 인터뷰를 위한 사진


    2009-01-02 Premiere No. 58



    스페셜 전체 제목, 아 2008년에 이 배우들 없었으면, 안 그래도 숏같은 현실 진짜 지랄같았겠구나. 동의하지? 인정하지? 2008년 가장 통쾌한 한 순간을 보여준 배우들, 조아조아, 멋져멋져

    <쌍화점> 주진모

    그런데 이번엔 반대가 된 거 같다. <사랑>에선 보스를 배신하고, <쌍화점>에선 사랑을 좇아 떠난 이들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배우 입장에선 사실 <사랑> 때 이렇기 때문에 <쌍화점> 땐 이렇게 했다 그런 건 전혀 없다. <사랑>이라는 시나리오를 받았을 땐 ‘꽂힌다’ 그러잖아 흔히. 그 인물에 내가 들어갈 수 있다, 없다라는 것만 보고. 내가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보인다. 처음에 읽었을 때 그 감정대로 간 거였다. 인호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내 스스로가 뭐랄까. 남자 배우라면 한 번쯤 꼭 해보고 싶은 장르라고 얘기도 하잖아. 사실 그 인호라는 친구가 내가 여태까지 꿈꿔왔던,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겪었던 직간접적인 경험담과 비슷하게 얘기가 되니까. 인호라는 친구가 내가 되어 있더라. 그렇게 의도적이고, 계산적인 거 없이 표현했던 거였고. <쌍화점>은 <쌍화점>대로 왕으로서. 읽으면서 그 안에 들어가 버린 거지. 근데 그 전에 인호라는 인물은 다 털고 왔으니까. 그렇게 연결되는 부분은 전혀 예상도 못했고 생각도 못 했다. 근데 그렇게 보일 수는 있을 것 같다.

    <사랑> 시나리오를 일컬어 ‘올인’이라는 표현을 했던데. 내 것이 아니면 안될 것 같은. 그건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던 거잖아. 그런데 <쌍화점> 시나리오를 보고 나선 고민이 많았다고 들었다.그 고민이 뭐냐면 워낙 <사랑>의 인호라는 캐릭터는 한 여자를 위해서 몸 바치는 놈이잖아. 어찌 보면 지극히 단순한 사람이지만 그 뚝배기 같은 마음이 관객들한테 전달되면 관객들도 동요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나의 목표만 두고 간 거였지. 그에 비해 <쌍화점> 시나리오에서 왕이라는 캐릭터는 단지 왕이라서 왕의 모습만 보여준다고 되는 게 아니다. 왕 이면에 갖고 있는 그 사람의 심경 변화에 의해 드라마가 가게 되고, 상황이 전개되니까. 왕이 항상 발단의 시점이 돼서 사건을 저지르게 되잖아. 왕이 어떻게 표현하냐에 따라 이 영화의 색깔이 확 틀려진다. 그 기준점을 먼저 잡는 게 왕이니까. 그거에 대한 고민을 안 할 수가 없는 거지. 난 분명히 이렇게 해석하고, 이렇게 알고 있었는데 연출자는 글은 이렇게 썼지만 난 이런 뜻이야 라고 했을 때 그 간극이 생기면 촬영 못하는 거다. 그렇게 맞춰 가는 게 가장 고민이었고 힘든 부분이었다.

    그간 영화에 등장하던 왕의 캐릭터와는 조금 달랐다. 홍림이를 향한 왕의 마음에 측은한 감정까지 들더라.
    참 희한한 게 시나리오 읽은 사람들 모니터 해보면 왕이라는 캐릭터를 그런 식으로 해석한 경우의 대부분이 다 여자들이다. 남자들이 읽었을 때 왕을 바라보는 시각이 또 다르다. 제작발표회 할 때부터 감독님이 ‘왕은 동성애자입니다’라고 오픈을 했지만, 결론적으로 왕은 중성적인 여러 감성들을 갖고 있으면서도 대체로 여성적인 심리를 갖고 있는 친구라고 느껴지더라. 여자이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드는 거고. 또 그런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사랑에 대한 표현을 반대로 할 수 있고. 시기와 질투도 할 수 있고. 그런 걸 또 대놓고 하지 못하고 숨어서 표현하잖아. 사실 남자들은 ‘너 왜 그랬어?’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데 여자들은 안 그런다. 왕도 그런 심리를 가지고 간 거다. 그걸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습득할 때까지, 그 인물에 들어가기까지 정말 많은 여자들의 마음을 많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예전에 사랑을 하면서 내 입장만 생각했던 게 있다면 다시 한 번 뒤돌아 보게 되더라. 아 여자 입장에서는 나한테 이랬던 거였구나 난 왜 그 때 몰랐지? 이런 걸 알게 되기도 하고. 영화 찍을 때 그런 걸 많이 빌려와서 표현했다.

    스트레스가 엄청 많았다고 하더라. 처음으로 탈모라는 것도 겪어봤다. 새치라는 것도 생겨보고. 몸으로 반응하는 건 처음 느껴 봤는데 어쨌든 그런 결과가 있기 때문에 영화 찍고 나서의 훈장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들고. 지금은 다 나았으니까.  나와 친구처럼 지내는 장동건 씨 같은 경우도 <태극기 휘날리며> 찍을 때 굉장히 스트레스 받고 많이 힘들어서 원형탈모가 생겼었다. 내가 약도 발라주고 그랬거든. 그런 걸 회상하면 이만큼 애를 쓰고 하니까 좋은 결과가 나왔지 않나 생각한다.

    영화를 찍는다는 건 배우들에게 고통스러운 작업이기도 하지.
    그런 부분에서 내가 이렇게까지 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고 그럴까? 이렇게 까지 해야 되나? 너무너무 힘들 땐 그런 순간이 있다. 일반인들은 영화 작업이 어렵다 하면 ‘얼마나 힘들기에?’ 이렇게 얘기할 수 있겠지만. 어느 작품이냐에 따라서 다르잖아. <쌍화점> 하며 너무 힘들었을 때 유하 감독님의 말이 귀에 확 들어왔다. “니가 고통스럽고 괴롭고 힘들어야 관객의 눈은 즐거워지는 거야. 그리고 니가 이만큼 했을 때 결과물은 니 손자 후손까지 다 볼 수 있는 거야. 단지 여기 며칠 몇 개월 고생한다 해서 그게 다가 아니라 나중을 생각해보자.” 정답인 거지. 내가 지금 이 고생으로 인해서 앞으로 더 편해질 수 있는 거고. 앞으로 더 행복하게 일을 할 수 있는 건데. 여기서 내가 조금 나태해지고 풀어지면 그에 대한 결과는 나한테 고스란히 오는 거니까. 그걸 내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예전에 영화가 그렇게 하고 싶어도 안 시켜 줄 때가 있었잖아. 그걸 생각하면서 맞아. 그래. 다시 또 하게 되고 그랬던 거지.


    그런데 주진모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데뷔 초에도 쉽게 가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 때는 자존심이 있었다. 아집이지. 매니지먼트에 휘둘리고 싶지 않은 그런 거. 그 당시 20대 때 ‘난 배우로 갈 거야’란 마인드가 좀 있었다. 만약 스타성만 생각하고 갔으면 그 쪽으로 갈 수도 있었을 텐데. 또 그 당시에 동경해 왔던 선배들이 ‘작품성’ 위주의 라인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때 스스로 아직은 내가 연기자로 자격이 없다 느꼈기 때문에. 난 아직까지 배워야 돼. 겪어보고 경험을 해봐야 돼 란 생각이었다. 스스로가 너무 불안한 거다.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새로운 경험을 빨리빨리 체득해서 ‘영화 배우 선수’란 얘길 들어야 되는데 아직까지도 그만큼 인정을 못 받는다는 건 내가 부족하다는 거니까. 그래서 좀 더 실험적이고, 모험적인 캐릭터들로 가게 된 거다.

    보통 20대에는 자기에 취하기 십상인데?어렸을 때 공부를 안 해서 그런지. (웃음) 난 지금도 그렇다. 난 아직도 부족해. 아직도 배고파. 또 어떤 걸 받아들여야 되지? 계속, 끊임없이 그래야 될 거 같다. 내가 지친다고 느낄 때 또 어떤 사람들을 통해 자극을 받아 다시 일어서야 되고. 사람마다 방향이나 생각하는 게 틀리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예전에 버림받았던 배우에서 다시 살아 남는 배우가 되지 않았나. 매번 스스로 자화자찬하는 말인데. 어쨌든 예전에 그런 걸로 인해서 상처 아닌 상처도 받고, 자존심도 다 상해보고. 그래서 배우, 스타 폼 잡는 게 다가 아니구나 하는 것도 알게 된 거지.

    배우에게 정체만큼 무서운 게 있을까?
    최대의 적이지. 중요한 건 용기인 거 같다. 나 자신을 깨지 않으면 노력한다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가령 이건 좀 비하적인 발언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그런 뜻으로 이야기하는 게 아니니까 오해하지 않았으면 하는데. 특히 여배우들 같은 경우 용기가 없어서 그 자리에 머무는 배우들이 있거든. 근데 그걸 깨고 나온 배우들은 두드러지게 나온다. ‘여배우’ 하면 ‘전도연’ 하고 나오잖아. 그렇게 나오는 케이스에 이어가는 배우가 없다라는 건 그 틀을 깰 용기가 없다는 거거든. 사실 <쌍화점> 왕후 역할 캐스팅은 시나리오를 본 여자 배우들이 ‘허걱’하고 용기가 없어서 안 되는 거였다. 용기라는 건 그런 부분에 준하는 얘기도 되고.

    주진모에게 정체의 순간은 없었나? 스스로를 답습하게 되는.
    처음으로 일 년에 한 세 작품을 해본 적이 있는데. 우선 사람이 몸이 지치면 정신적으로 생각을 못 하니까 기계적으로 될 수 밖에 없더라. 근데 그건 나만 아는 거지 보는 이들은 모른다. 스스로가 그렇게 느껴질 때가 있더라고. 그래서 마음 속으로 다짐한 게 아직까지 내 혼이 들어가지 않은 작품이라고 생각되는 건 하지 말자는 거였다. 아직까지 그런 방법론을 터득하지 못해서 그런지 어쨌든 난 배우라는 직업을 갖고 카메라 앞에 섰을 때 진정성이 안 느껴지면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거 같다. 날  보는 수백 만 수천 만의 시청자나 관객들이 사기를 당하는 그런 기분까지 들 정도로.
    참 아이러니한 게 카메라 앞에서의 연기는 관객을 속이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 거짓을 말하는 거지만 그 순간, 카메라 앞에서 선 스스로가 진정성이 있다라고 느끼는 부분일 거다. 예를 들어 아주 간단하게 ‘너 울어. 울어. 울어.’ 이러다 ‘울라고!!’ 윽박지르는 거에 놀라서 우는 거랑. 표현 자체를 ‘진모 씨. 예전에 여자 친구랑 이럴 때 이런 마음이 있었잖아. 근데 그 느낌이 어땠어.’ 그걸 회상하며 울지만 얼굴은 웃고 있다. 오히려 그런 부분에서 더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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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12 VOGUE - feature story



    시 인이자 감독인 유하가 어찌하여 고려궁중남녀상열지사에 눈을 돌리게 되었는지는 누구에게도 전해내려 온 바 없다. <말죽거리잔혹사>와 <비열한 거리>에 이어 ‘청년 성장 잔혹사 3부작’을 만들고자 했던 감독 유하. 어느날 그의 뇌파에 ‘사극’의 시공간이 폭풍처럼 휘몰아쳤고,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눈을 떠서 주위를 돌아보니, 시대는 고려, 장소는 궁중, 그가 비호해 마지않던 ‘청년’은 왕 앞에서 긴 칼 차고 머리를 조아리는 호위 무사가 되어 있더라. 오호라! 이곳은 비열한 정치와 편향적 성애가 뒤섞여 청년들의 페니스를 조기 거세시키는 ‘비열한 궁중의 거리’. <비열한 거리>에서 어떻게든 생활을 꾸려가려던 치열한 건달 조인성의 뒤를 봐주던 ‘비정한’ 어른 천호진의 권력은, 고려왕 주진모가 이어받고, 두 남자 사이에서 청초하게 피어 가련하게 소비되는 여성은, 원나라에서 온 왕후 송지효가 이어받은 셈이 아닌가. 고려왕 주진모는 화려한 왕관을 썼으되, 밖으로는 원나라의 섭정과 안으로는 신하들의 반정 모략으로 아슬아슬한 칼날 위를 걷고, 그를 호위하는 친위부대의 무관 조인성은 오로지 왕을 위해 태어나고, 왕에 의해 키워지고, 왕이 없으면 죽어질, 바람 앞에 등불 같은 ‘왕의 남자’일 터. 그리고‘왕의 남자’ 조인성과 ‘왕의 여자’ 송지효가 동침하게 되자, 이 고려궁중상열지사는 ‘금지된 외도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마치 ‘천일의 앤’과 ‘헨리 8세’의 피비린내 나는 영국사처럼 고려 궁중에 ‘사랑과 배신’의 피바람을 불러왔을 것이다. 영화의 제목인 <쌍화점>은 동일한 고려가요 ‘쌍화점’에서 따온 것으로, 고려 충렬왕 때 궁궐에서 부르기 위해 만들어졌다.


    영화 <쌍화점>을 끝내고 처음 바깥 세상으로 나온 그에게는 청년이라 이름 붙일 만한 싱그러운 패기도 남성성의 팽창도 없다. 세기말 비엔나 시대의 퇴폐적인 예술가처럼 ‘성이 거세된’ 건조한 야성만이 남아 있다. 그에게서는 마치 불가사의한 의도를 품은 어떤 냉혹한 힘이 지키는 침묵이 잔재처럼 남아 있었다. 자신이 가지 못한 것에 대한 질투와 선망이 담긴 ‘인간적인’ 아름다움 때문에, 가지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해 돌부리를 걷어차며 울고 가는 어린아이 같은 분노 때문에, 감독은 그리고 관객은 그에게 연민을 느낀다. 유하 감독은 그를 성장시킨 영화 인생의 스승이다. <비열한 거리>에서 유하 감독은 조인성을 몇 가지 성분으로 나누어 보여준다. 고교 동창들 앞에서, 잘보이고 싶은 여자 친구 앞에서, ‘가오’ 잡고 거두어야 할 건달 후배들 앞에서, 자신의 밥줄을 쥐고 있는 권력자 앞에서, ‘청년’ 조인성은 ‘착하게’는 못 살아도 ‘제대로’ 좀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영웅은커녕 영화 전편에 물리적 정서적 굶주림이 가득한 이 영화에서 조인성은, ‘살아남기 위해’ 보스를 배신했지만, 그 대가로 절친한 친구와 믿었던 후배에게 두 번 배신 당한다.

    영화 <초록물고기>의 젊은 한석규처럼, 조인성도 조직생태학의 밑바닥 먹이사슬이 그러하듯 ‘개죽음’을 맞는다. <비열한 거리>가 끝난 후에도 한동안 조인성은 칼 비린내를 풍기며 짧은 ‘조폭’ 머리를 하고 마초처럼 건들거렸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쌍화점>에서 나온 그는, 가시덤불 같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수염이 없는 소년 같은 용모로 ‘휘청거리며’ 쓰러질 것처럼 걷는다. 다소 인위적인 그의 불안은 다른 모든 불안과 달리 행복감을 절정으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그것을 점점 더 위태롭게 흔들어놓고 있는 듯 보였다.

    “네. 저는 혼돈을 겪는 중입니다. 그리고 그 상태가 심해질수록 육체적으로는 드라이해지지만, 정신적으로는 명랑해져 가고 있다고 느낍니다. 제가 읽고 있는 책을 한번 보시겠습니까? 오에 겐자부로의 <회복하는 인간>… 여기 밑줄 친 대목을 제가 읽어드리죠. ‘지적인 명랑함. 앞으로 그가 복용하는 약은 늘어날 테고 말수는 줄어들고 잠은 못 자겠지만, 지적으로는 점점 더 명랑해졌다.’ 이게 현재 제 상태입니다. 놀라시는군요. 이렇게 사색적으로 제가 공부를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배우들은 다 ‘~한 척’하는 인생들이에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게 시시하게 느껴집니다. 아는 걸 넘어서 이해하기 시작하면 ‘~한 척’하지 않아도 되죠. 아는 건 TV장학퀴즈에 써먹으면 됩니다. 알고 이해해야 지식을 부릴 수 있죠. 아는 데 머무르고 싶지 않아서, 내가 알고 싶어 하는 건 이해하고 싶어서, 좋은 맥락으로 나이 먹고 싶어서 애를 쓰고 있습니다. 네, 제가 ‘맥락’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앞서 ‘상태’라는 말도 했지요. 그건 현재 제게 무척 중요한 어휘들입니다. 어떤 상태로 살고 있는지가 배우의 연기에서 흘러나오더군요. 반대로 어떤 맥락에서 연기했는지가 배우의 현재 상태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한양대 안민수 교수님이 말씀하셨어요. “배우는 곧 그 상태다!” 저는 전형적인 메소드 연기자입니다. 네, 저는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7~8년간 연기 선생을 모시면서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 메소드는 무대 위의 인물을 내 몸과 마음에 일체화시키는 작업입니다. 저를 보세요. 스타일이 몰라보게 바뀌었지요? 약간은 퇴폐적이고 우울하고 성적으로 모호해졌습니다. <쌍화점>의 미소년 친위부대, 동성애 코드가 있는 무사 ‘호림’을 연기하고 나서죠. 유하 감독과 저는 시나리오 초고 단계에서부터 많은 대화를 나눴지요. 동성애, 베드 신, 거세 등등. 촬영이 끝나고 나니 저의 모든 취향이 아방가르드하게 바뀌어 있더군요. 전 세계 디자이너들 중에 게이 디자이너들의 비중이 크다는 건 아시죠? 그리고 남자도 여자도 아닌 그들이 패션계에 전혀 새로운 상상력을 증폭시키고 있지요. 저는 고정관념이 없는 그들의 패션을 맘껏 받아들여볼 생각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저는 현재 제 몸을 건조시키는 중입니다. 세상 기름을 다 빼내고 싶습니다. 세상을 다 안 것 같은 오만과 자만과 거드름 같은 것들이요. 제가 이런 말을 하니 놀라시는군요. 좋은 대화는 좋은 연기와 마찬가지입니다. 서로가 좋은 귀를 가질 때 좋은 이야기들이 오가는 거죠. 저는 더 많은 소울 메이트, 소울 티처를 원합니다. 유하 감독은 제 스승이셨지요. 그리고 <비열한 거리> 이후 우린 영화 동료가 됐습니다. 사람들은 젊은 연기자가 연기를 못하면, ‘형편없는 배우’로 깎아내리지만, 유하 감독은 달랐어요. “배우가 연기를 못했다면 그건 시나리오의 문제지”라고 배우를 두둔했지요. 저는 그분 때문에 조금은 덜 외로워졌습니다. 맞습니다. 관객들은 제가 브라운관에서, 스크린에서 ‘안간힘’을 쓸 때 찬탄이 아닌 연민과 감동을 받는 것 같습니다. 제가 철철 피를 흘리고, 가슴을 붙잡고 오열할 때 말입니다. 제가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디카프리오, 정우성, 양동근 같은 배우들. 타고난 게 많아서 가만 있어도 빛이 나는 사람들. 저는, 저로 말할 것 같으면 뭔가를 있는 힘껏 표현해야 약간 멋있어지는 타입이지요.

    유하 감독은 저를 다룰 때 마구 궁지에 몰아넣었다가 풀어놓곤 합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렇게 말하죠. “할 수 있어. 쉬워. 못하겠니? 나이가 어려서 그런가?” 그러면 저는 오기가 나서 감독의 ‘OK’ 사인이 날 때까지 지옥까지 달려가는 겁니다. 어쩌면 연기에서 어떤 부분의 성취는 ‘헝그리 액터’가 이뤄낸 것일지도 모릅니다. 배부른 연기보다 배고픈 연기가 갖고 있는 ‘광기’가 있어요. 저는 배고픈 연기자였습니다. 제가 일하던 시절은 IMF 시절이었고, 가난이 어떻게 삶을 부숴놓는지를 경험했어요. 사내가 돈이 없으면 사람을 피하고 주눅들어 버리죠. 배우의 꿈을 놓았다면, 태권도 관장이라도 돼 있을 겁니다. 직업을 가져야 언젠가 다시 꿈을 논할 수 있으니까요.

    <쌍화점>은 결국엔 궁을 벗어날 수 없는 소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릴 때부터 궁궐에서 왕의 총애를 받고 자라, 거기서 이성에 눈을 뜨고, 왕의 여자를 범하고, 원나라와의 파워게임에 휘말리고… 저는 마치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같은 갈등을 느낍니다. 왕의 사랑과 왕후의 사랑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관객들이 부디 저의 연기를 좋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대사를 잘 하는 배우가 아닙니다. 감정이 눈으로 와서 그 다음에야 입술로 전해지죠. 데뷔 초까지 제 입술은 너무 빨개서 오해를 받곤 했는데, 지금은 약간 색이 바랬습니다. 네, 저는 TV와 잘 맞는 멜로 배우이기도 했어요. <별을 쏘다>와 <봄날>에서 전도연과 고현정이라는 당대의 여배우들을 만났죠. 눈으로도 입으로도 유연함과 멋진 에너지를 발산하던 여배우들. 그리고 최근 몇 년 동안 제 몸의 아드레날린을 발산할 어떤 절정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한동안 쉬었지만 답을 찾지 못했어요. 의리? 동성애? 글쎄요, 제게 필요한 현실적인 아드레날린은 여자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떤 여자가 저의 현재 상태 이런 ‘뒤죽박죽 지적인 명랑함’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라이터 불이 확 타오르더니 주위를 집중하고 있는 이 기이한 ‘성년’의 마른 얼굴이, 진한 눈꺼풀과 앙상한 가슴팍이, 약간 퀭하고도 공허한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도 가슴뼈에 꽂힌 칼날이 빠지지 않은 것 같았다. 그가 담배를 몇 차례 힘차게 빨자, 담배의 조그만 불꽃이 규칙적으로 타올랐다 사그라졌다 하면서 그의 얼굴에도 빛과 그늘을 드리웠다. 조인성은 사진 촬영 도중에 혼자 울었다. 실로 아름다운 얼굴이지만, 그 홀로 완전한 얼굴이 아니었다. 조인성의 얼굴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질투와 선망이 담겨 있어서 더욱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다.


    주진모는 2001년 영화 <무사>에서 중국 사막을 달리는 고려 장군 최정을 연기했다. 올해 초 공개된 한중합작 드라마 <비천무>에서도 고려 자객 자하랑을 연기했다. 그리고 2008 하반기 최고의 대작 유하 감독의 <쌍화점>에서는 호위 무사 ‘하림’을 사랑하는 고려 왕을 연기한다. 장군, 자객, 임금… 주진모만큼 동일한 시대극에서 혹은 그 밖의 다양한 작품에서 주요 배역을 맡았으면서도, 연기적 ‘표상’을 한번에 정의 내리기 힘든 배우도 드물다. 주진모는 얼마전 김아중과 함께한 영화 <미녀는 괴로워>로 대중적 사랑을 받았지만, 그 전까지는 ‘미남은 괴로워’라는 말의 대표적 피해자로, 어쩌면 그의 코가 1mm만 낮았더라도, 영화계의 필로그래피에 지각 변동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장 동건은 지나치게 잘생긴 외모 때문에 초기에 TV 전용 배우로 전락할 뻔했지만, 결정적으로 <친구>의 곽경택 감독 덕분에 강렬한 성격 배우로 자리 잡았다. 정우성은 <비트> 김성수 감독의 페르소나로, 영화계의 ‘미남’ 징크스를 깨고, 일찌감치 톱 스타로 군림했다. 영화계 사람들은 외모와 실력과 성실성을 갖춘 배우로서 주진모를 인정했지만, 그의 강한 실험 정신이 작가주의 감독들에게 영감을 주지는 못한 것 같다.

    몇 년 동안 나는 주진모를 세 번 만났다. 2001년 김성수 감독의 <무사> 촬영이 끝났을 때, 그는 호위 노예 ‘여솔’을 연기한 정우성과 나란히 <보그> 지면에 등장하며, ‘누가 누가 잘생겼나’를 겨루는 전도유망한 청년 배우였다. 2004년 연극을 영화로 만든 <라이어>에서 택시 기사를 연기했을 때는, 그는 진지함과 갈증이 절정에 달해 있었지만, 이 라이트한 할리우드식 하우스 스크루볼에 관심을 기울이던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게 문제였다. 어떤 관객이 그토록 높은 코를 가진 남자가 택시 기사 제복을 입고 자가당착에 빠져 허우적대는 꼴을 보길 원하겠는가. 내가 보기에 그당시 주진모에게 필요한 건 성실성이 아니라 자신감, 진지함이 아니라 뻔뻔함이었다. 그 자신, 스스로의 외모를 부담스러워했기 때문에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기억 의 카메라를 더 과거로 돌리면 그는 데뷔 초기에 두 편의 문제작에 출연했다. 1999년 정지우 감독의 <해피엔드>와 2000년 김기덕 감독의 <실제 상황>. 주진모라는 배우가 가진 에너지의 자장을 가장 깊고 넓게 파고든 문제작 <해피엔드>에서 주진모는 전도연을 불륜의 파국으로 이끄는 ‘불안한 수렁’을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뿔테 안경과 덥수룩한 수염으로 그의 수려한 골격을 뭉개버리고서야 가능한 일이었지만. 주진모를 탈피한 주진모라고나 해야 할까. 김기덕 감독과 작업한 <실제 상황>이 매스컴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은 데는 단 3시간 만에 촬영을 완성한, 기네스북 감의 제작 방식 때문이었다. 러닝 타임은 총 1백분. 작가적 치기로 완성된 김기덕의 이벤트에서 주진모는 ‘동원된 스타’ 이상의 연기적 소득을 얻지 못했다.


    회고해 보면 주진모는 영화사에서 지나치게 ‘소비’되었다. 그의 진중하면서도 선한 캐릭터를 사려 깊고 세련되게 ‘소화’시켜준 쪽은 오히려 영화가 아닌 TV드라마. 트렌디 드라마 <때려>와 <패션 70’s>에서 자신감을 얻은 주진모는, 2006년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서 ‘잘생긴 게 죄’가 아니라는 걸 멋지게 증명해냈다. 바로 미녀를 바라보는 미남의 자연스러운 카리스마로! 브라보! 주진모의 깨끗한 안타였다. 타이밍이 약간 늦긴 했으나, 곽경택 감독이 <친구>의 멜로 버전으로 만들어낸 영화 <사랑>에서도 주진모는 선전했다.

    내가 인터뷰를 하기 위해 분장실로 들어서자 주진모는 아편이라도 한 것처럼 의자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사진 촬영을 위해 그가 겪었던 격렬한 감정이 모두 지나가고, 이제는 기진맥진한 가운데 평온한 감정이 생겨난 것이다. “말씀하셨듯이 제가 다른 배우들처럼 영화계의 고속도로를 타면서 이 자리에 오진 못했어요. 처음 했던 드라마도 노희경 작가와 표민수 PD가 만들었던 동성애 단막극 <슬픈 유혹>이었고, 김기덕 감독과 하루 만에 <실제 상황>이라는 작품도 찍었고. 20대 초반에 핫하게 갔어야 했는데, 그때 역으로 거꾸로 남들이 피하는 길로 갔어요. 그때 물꼬의 흐름을 잘 텄으면 어땠을까…, 지난 일이지만 ‘유씨어터’ 3기로 겨우 연극 포스터나 붙이다가 갑자기 영화계로 들어왔어요.

    처음 연기적 열정을 느낀 건 <해피엔드>. 스물 네 살에 30대 분장을 하고 ‘강박적인 사랑’을 표현했어요. 참 아쉬웠던 게 그 이후로 찍은 영화에서 감독들은 제가 ‘눈에 힘을 주기를’ 원했어요. 저를 캐스팅한 이유 중 하나가 마스크가 세니까, 어서 그 ‘세기’를 사용하라고. 하지만 전 장동건처럼 <친구>나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대표작을 갖지 못했어요. 제 생각대로 눈에 힘을 빼기 시작한 건 <미녀는 괴로워>부터였어요. 아중이에게 그랬죠. 네가 만화 캐릭터로 잡아서 어색하게 갈수록 내가 릴랙스하게 갈게. 그렇게 힘을 빼니까 전체 톤이 맞고 마침내 관객들도 좋아하시더라구요.

    <쌍화점>은 정말 어려웠어요. 유하 감독은 배우의 자존심을 꺾어놓고 처음부터 조련하더군요. 첫 테이크를 갈 때부터 예고된 일이었지요. 제가 시름시름 앓는데, 호위 무사 인성이가 들어와서 죽 시중을 드는 장면이었어요. 그래도 신하에게 왕으로서의 기품을 유지하려는데, 테이크를 끊고 바로 들어와서 그러시더군요. “표정 세니까 눈에 힘 풀고 팔 동작부터 다시 시작해 보지요.” 어느날 집에 가서 보니 새치에 부분 탈모까지 생겼어요. 자존심을 꺾고 처음부터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행복합니다. 생각해보세요. 저는 이제까지 영화계에서 좌충우돌하면서 지내왔어요. 6년 전 계약한 <비천무> 는 2~3년 전 중국에서 갑자기 들어오라고 해서 무려 1년을 촬영했고, <라이어>는 소속사에서 패키지로 묶인 상태에서 출연했고, <실제 상황>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르고 움직이기만 했죠.

    그 런데 유하 감독이 제게 <쌍화점>의 선장 역할을 준 거예요. 저는 왕이지만, 또 왕이 아니에요. 왕으로 포장된 똑같은 사내, 똑같은 인간. 권력의 상층부에 있는 인물이지만, 인생살이의 희로애락은 다르지 않아요. 유하 감독이 제게 원한 것도 그런 인물. 스러지는 권력을 가진 보통 남자. 어떤 상황에서든 첫 대사가 저였고, 제가 뼈대를 어떻게 잡아가느냐에 따라 전체 분위기가 결정됐어요. 제가 인간 본성이 숨쉬는 현대적인 질감의 고려왕을 잘 표현했느냐? 영화 선배로 인성이와 지효를 이끌고 잘 갔느냐? 그건 영화에서 보이겠죠. 저는 최선을 다했고, 지금처럼 자신감을 가져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지금 너무나 만족합니다.” 주진모는 <와니와 준하> 를 끝내고 캐스팅이 없어 3년을 쉬었을 때, 차도팔고 빚도 졌다고 했다. 드라마 <때려!>로 나왔을 때, “신인 배우가 연기 잘하네”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주진모의 주위에 심오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는 거울 앞에 앉아 생각하고 또 생각했는데, 그것은 새로운 생각이었다. 그는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완전히 해방된 듯했다. 그는 야망이 있는 멋진 사내였다. 머리와 수염을 기른 얼굴에서 자연스러운 빛이 났고, 몸에서는 테스토스테론이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영화 <쌍화점>에서 송지효는 고려왕 주진모와 호위 무사 조인성의 ‘동성애적’ 사랑에서 균형을 만드는 이방인 같은 존재이자, 균열을 일으키는 결정적인 존재, 원나라 출신 왕후를 연기했다. 왕과 왕후 사이를 오가며 햄릿의 독백으로 번민하는 사람은 조인성이되, <보그>가 만들어내는 ‘스캔들’에서 조각 같은 두 남자를 견주는 권력은 송지효에게 주어졌다. 조인성과 주진모는 에로틱한 꿀물을 부어대는 붉은 여신의 중재로 남성성을 겨루고, 이 두 명의 아도니스와 나르시스의 얼굴이 겹쳐 드러나는 거울 앞에서 송지효는 구애의 심판관이 된다. 아! 모든 여성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을 만한 역할이 아닌가! 그만큼 송지효는 예뻤다.

    게다가 자아가 강한 여배우였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설명되고’ ‘표현되길’ 원했다. 모든 20대 여배우들이 그러하듯이 전도연이나 장진영을 롤 모델로 삼고 있었으나, 사실 두 사람의 차이는 너무 크다. 전도연은 뼛속까지 에스트로겐이 숨쉬는 구체적이고 직설적인 여자고, 장진영은 심장에 테스토스테론의 열정이 고인 남자 같은 여자다. 어쩌면 송지효는 두 여배우의 경계에 서 있는지도 몰랐다. 그녀에게는 ‘내숭’이나 ‘전략’은 없어 보였지만, 두 여배우가 공통적으로 지녔던 내면의 ‘독기’와 ‘진심’이 보물처럼 빛났다.

    “처음부터 왕후가 큰 비중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시나리오의 임팩트가 워낙 강했어요. 공민왕과 원나라 노국 공주라는 실화를 모티브로 만들어졌으니까요. 기존의 유하 감독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가 연약했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한 나라의 왕후로 내적인 강함이 두드러질 거예요. 제겐 큰 행운이죠. 캐스팅 순위에 있던 여배우 중에 제가 마지막으로 감독님을 만났어요. 화장도 안 하고 머리를 질끈 묶은 모습으로 갔는데, 그게 더 점수를 땄죠.”

    마지막으로 송지효는 왕후다운 기품으로 신비주의의 베일에 싸인 이 영화 <쌍화점>의 베스트 신을 뽑아주었다. “쌍화병이라는 중국 만두를 파는 가게가 쌍화점이에요. 고려 가요 <쌍화점> 가사처럼 제가 누군가에게 만두를 나눠주는 장면이 나와요. 전 그 장면이 따스했어요. 또 하나는 조인성이 왕을 쳐다보는 장면, 그 얼굴엔 이렇게 써 있죠. ‘왕이여, 제게 왜 이런 시련을 주셨나요?’, 그리고 왕 역할의 주진모, 제 서방이 검무장에서 용맹하게 싸우는 장면이 멋있답니다.” 그리고 유하 감독을 대신해 이 ‘스캔들-고려남녀상열지사’의 메시지를 영민하게 풀어냈다. “사랑의 막막함, 사람의 애잔함… 어느 하나 슬프지 않은 사랑이 없고, 누구 하나 사연 없는 사람이 없더라!”

    만두 가게에 만두 사러 갔더니 몽골인이 내 손목을 쥐더이다. 이 말씀이 이 가게 밖에 나며 들며 하면(소문나면) 조그마한 어린 광대(심부름하는 아이) 네가 퍼뜨린 말이라 하리라. (다른 여인들이) 그 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그가 잔 곳같이 울창한 곳이 없다.
    -고려 궁중에서 유행한 외설 가요 <쌍화점> 중에서.

    - 자세한 내용은 <보그> 2008년 12월호에서 확인하세요!
    - 에디터 / 김지수
    - 출처 / www.vogue.com

    2008년12월 SCREEN - cover story






    <쌍화점> 조인성 주진모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혹은 증오하는가


    극 한의 사랑은 극한의 외로움에서 출발한다. <쌍화점>은 사랑의 슬픈 진리를 깨닫는 두 남자의 이야기다. 새장 속에 갇혀 살아야만 했던 그들에겐 서로가 세상의 전부였고, 삭막한 삶을 위안하는 단 하나의 연인이자, 친구이자, 가족이었다. 하지만 한 사람이 새장 밖으로 나가는 순간,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진다. 한 번 자유를 맛본 자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족쇄를 벗으려 발버둥치기 시작한다. 한편 여전히 그가 세상의 전부라 믿는 남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를 붙잡아두려 한다. 사랑은 집착을 낳고, 집착은 파국을 부른다. <쌍화점>의 두 배우조인성과 주진모의 눈빛은, 지독한 사랑의 열병을 앓은 후 조금은 달라졌다.

    text_박혜은 design_김주리 photo_김형선


    <주 진 모> 자신을 믿어보기로 하다

    <미녀는 괴로워>(06)와 <사랑>(07)이 연달아 흥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는 달콤한 제안들을 무심하게 흘려보냈다. “배우는 한 곳에 머무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전작의 이미지에 갇히고 싶지 않은, 배우의 자존심이죠. 하하.” 사실 주진모는 <사랑>을 찍을 때부터 이미 마음에 둔 영화가 있었다. 유하 감독의 <쌍화점>이었다. 무사 홍림엔 일찌감치 조인성이 결정된 상태였다. “그럼 왕은 누가 할지 궁금하던 차에, 유하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보내셨어요. 내게 맞도록 각색한 뒤 주셨다는데, 읽으면서 깜짝 놀랐죠.” 절대 권력의 왕좌에 있지만 아무 것도 소유하지 못하는 가련한 왕.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왕이었다. “어렵고 난해한 인물이었어요. 그런데 확 끌리더라고요. 뛰어들면 후회할 일은 없겠다, 모험을 걸어볼 만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죠.” 우선 자신을 선택한 유하 감독의 기대를 만족시키고 싶었다. 아니, 기대치의 두 배를 보여줘 감독을 깜짝 놀라게 하고 싶었다. 그는 자신을 믿어보기로 했다.

    SCREEN 12月號



    看來"霜花店"的宣傳要正式開始了, 先來一張雜誌的封面讓大家先睹為快。(^*^)

    2008.11.18 FILM 2.0

    News - Feature

    12월: <쌍화점><이스턴 프로미스><벼랑 위에 포뇨> 등

    2008.11.18 / 온라인 편집부

    12월,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동성애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택한 유하 감독의 <쌍화점>을 시작으로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이스턴 프로미스>, 미야자키 하야오의 <벼랑 위의 포뇨> 등 스타 감독들이 귀환한다.


    ‘왕의 남자’ 조인성의 첫 사극 도전
    <쌍화점> 감독 유하 | 출연 조인성, 주진모, 송지효 | 12월 30일


    오래 기다렸다. 조인성이 드디어 금의환향한다. 2년 전 <비열한 거리>를 통해 ‘배우’로 거듭났던 조인성이 유하 감독과 다시 만났다. <쌍화점>은 ‘남녀상열지사’라는 용어를 탄생시킨 고려가요에서 제목을 따온 만큼 사랑과 배신에 대한 이 시대 가장 강렬한 사극을 예감케 한다. 출발은 원나라 배척운동을 주도한 공민왕(주진모)과 친위부대 ‘자제위’에 관한 기록에서 비롯됐다. <쌍화점>은 여기에 영화적인 상상력을 더해 36인의 미소년 친위부대 ‘건룡위’의 우두머리 홍림(조인성)과 총애했던 홍림의 배신에 치를 떠는 공민왕, 그리고 두 매력남 사이에서 갈등하는 ‘팜므파탈’ 왕비(송지효)의 위태로운 관계를 격정적으로 묘사한다. 특히나 야사(野史)에 집권 후기 문란한 사생활과 동성애를 즐겼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공민왕을 주인공으로 삼은 탓에 조인성과 주진모의 동성애 연기에 대한 소문이 양산된 바 있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결혼은 미친짓이다>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로 이어지며 대중성을 겸비한 작가주의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유하 감독의 사극 도전이라는 점이다. 드라마의 서사를 강조해왔던 그가 80억의 대작 사극을 어떻게 요리해냈을지, 또 조인성의 성장을 어떻게 조련해냈는지에 대한 결과는 2008년의 끝자락에 확인할 수 있다. 하성태 기자

    UP
    관심의 초점은 언니들의 로망에서 배우로 거듭난 조인성. 2년이 넘는 동안 조인성의 스타성은 그야말로 전성기를 맞았다. 대작 사극 <쌍화점>은 그의 티켓파워를 검증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DOWN
    관심도, 소문도 참 많았다. 동성애는 물론이요, 송지효의 노출, 촬영장 사고, 마케팅 교체 등 최근 <쌍화점>만큼 영화계 내부에서 시끌벅적했던 영화도 드물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은 기우이길.

    2008.01.10 Marie Claire - FEATURE & TALK

    인간 주진모 주소 복사
    그에게서 사람 냄새가 난다. 그런 배우, 오랜만이다.

    실 제의 주진모는 스크린에서보다 훨씬 더 선이 고운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크고 두툼한 손을 가졌다. 그리고 최근 그는 마초이즘의 어법을 빌려 투박하고 촌스럽게 남자들의 로망을 얘기하는 사랑 영화로 사람들을 울렸다. 스타의 길을 비껴가기로 한 주진모에게서는 사람 냄새가 난다. 그는 영화 관람료 7천원을 책임질 수 있는 배우다.

    영화 ‘사랑’ 끝나고 좋은 얘기 많이 들었겠다.
    그 전에는 여배우만 띄우는 배우란 소리를 자주 들었어요. 늘 아쉬움이 남았죠. 영화나 드라마 하면서, 더 가고 싶은데 더 갈 수 없는 부분들이 있었고. 지금 나이 아니면, 이런 역할 언제 또 해볼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스스로도 꽤 만족스러워요.

    근작인 ‘미녀는 괴로워’와 ‘사랑’에서 맡은 각각의 캐릭터가 배우 입장에서는 상반될 수 있었을 것 같다.
    테 크닉적으로는 ‘미녀는 괴로워’ 편이 더 어려워요. 보기에는 쉽지만, 김아중의 캐릭터가 만화적인 만큼 나는 인물의 디테일을 살려 현실성을 부여해야 했어요. 그래야 밸런스를 맞출 수 있으니까.‘미녀는 괴로워’의 상준은 이상적인 인물이 아니에요. 여자 때문에 변화해가는 모습을 그려야 했고, 연기하는 입장에서 힘들었어요. 그에 비해 ‘사랑’은 영화적 장치들로 풀어주는 부분이 거의 없다는 게 어려웠죠. 연기로 끌고 나가야 한다는 심적인 부담이 컸거든요. 카메라 앞에서 진정성만 있으면 된다고 믿고 찍었어요. 내가 진실성을 못 느끼면, 관객들도 느낄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랑’은 투박하고 촌스러운 구식의 마초 영화다. 그런 사랑,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영화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첫 사랑에 대한 꿈은 누구에게나 있어요. 특히 남자들한테는. 하지만 그 사랑이 모두 영화 같지는 않죠. 역할에 빠져들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했어요. 보는 사람들이 대리 만족을 느낄 수 있으려면 내가 믿어야 하니까 최면을 거는 거죠. 영화 개봉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실 ‘사랑’에 등장하는 얘기는 실화예요.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살인한 남자의 얘기와 대기업 회장의 여자와 사랑에 빠진 비서실장이 자살한 여자를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남자의 얘기를 합해서 하나의 얘기가 된 거죠. 그 얘기를 들은 다음부터는 캐릭터에 몰입하기가 훨씬 쉬웠어요.

    영화 종반부에 ‘여자는 순간’이라는 회장에게 인호는 ‘저는 아닙니다, 어르신’ 하고 죽으러 간다. 회장 역의 주현이 느낀 감정은 자기는 가져보지 못한 사랑을 가진 남자에 대한 질투였을까?
    인 호는 그 장면 하나를 위해 영화에 등장하는 건지도 몰라요. 나도 내 여자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 경험이 있어요. 불투명한 내 미래 같은 것들이 용기를 잃게 했죠. 지금 다시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용기가 생길 것도 같아요. 사실 영화 찍고 힘들었어요. 오늘 촬영하러 열흘 만에 집에서 나왔어요. 애써서 넣어뒀던 감정이나 기억을 끄집어내는 게 힘드네요.

    다음 영화도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조인성과 동성애 커플로 등장하는 영화 ‘쌍화점’ 얘기 하는 사람이 많다. 동성애에 대한 싸구려 호기심은 아니다. 하지만 주진모와 조인성 모두에게 용기를 필요로 하는 선택이 아니었을까?
    이 영화, 성에 관한 영화가 아니에요. 사람에 관한 영화죠. 하지만 용기가 필요했던 건 맞아요. 이 영화를 끝내고 나면 장담하지만 달걀이 되든, 병아리가 되든 뭔가 큰 변화가 있을 거예요.

    작년과 올해는 배우 주진모에게 변화가 많았던 해다. 같은 곽경택 영화에 출연했다는 것 말고도, 장동건과 주진모는 잘생긴 외모 때문에 손해를 본 배우들이란 공통점이 있다.
    20 대 때는 멋있는 역할이 좋았어요. 더 이상은 아니에요. 배우는 대중의 기대를 배신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맞는 얘기란 생각이 들어요. 모험하는 배우들이 오래 한다면서요. 배우 오래 하고 싶어요. 사람들이 저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대요. 그래야 궁금해서 오래도록 나를 쓰죠(웃음). 그리고 천성적으로 사람들 앞에 연예인으로 나서는 걸 잘 하지도 못하고.

    솔직히 당신의 열혈 팬도 아니고, 당신을 보려고 그 영화들을 봤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주진모의 연기에 눈이 갔던 영화들이 꽤 있다. 캐릭터를 전형성에서 비껴나게 해주는 디테일은 누구의 아이디어에 기초하나?
    콘 티대로 연기하면 되는 역도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 웃을지 울지가 궁금해지는 역도 있어요. 그런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얘기하고 디테일을 만들어가는 편이죠. 감독 머릿속에 그려지는 캐릭터의 모습이 있어요. 그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를 같이 알아가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당신이 연기했던 캐릭터 중에는 ‘정말 나쁜 놈’이 없다.
    악 역에도 이유가 있으니까요. 왜 나쁜지에 대한 이유가 없으면, 제대로 연기할 수가 없어요. 시나리오를 고를 때 배우들이 가장 많이 보는 부분은 인물의 당위성이에요. 그러니까 정말 나쁜 놈은 없어요. 그런데 현실로부터 동떨어져 있는 인물이 너무 많아요. 열심히 쓴 책으로 연기하고 싶은 거죠.

    당신, 마초 같다.
    1남 3녀의 막내예요. 수줍은 많은 애였어요. 아마 내 안의 여린 부분을 숨기려고 하다 보니까 오히려 남자처럼 구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나는 강한 남자가 아니에요. 내가 누군가에게 나빴던 기억들은 잊지를 못하겠어요.

    주진모에게 배우는 좋은 직업인가?
    20 대 때 ‘오빠’ 하는 비명 소리 좋았죠. 아직까지는 행복해요. 그런데 어려워요. 역할 하나를 맡으면, 거기서 벗어나기가 너무 힘들어요. 주변 사람들이 너 요즘 말투랑 행동이 바뀌었다고 할 정도니까.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스케줄 없을 때는 외출도 잘 안 하고, 외롭기도 하고, 내가 우울증에 걸렸나, 아니면 귀차니스트가 된 걸까 생각할 때도 있어요. 덕분에 감성 지수는 높아져서 연기를 하기에는 좋지만 사회성이 점점 떨어지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해요.

    주진모가 생각하는 배우 주진모의 단점은?
    복잡한 걸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

    그건 장점인데?
    배 우들은 약아야 해요. 꺾이고 나면, 다른 쪽으로 선회할 수도 있어야 하는데, 헤어나지 못하고 고수하는 건 장점일 수 없으니까. 배우라는 직업을 계속하면서 주변에 사람들이 줄어든다는 것도 그런 성향을 키우는 이유가 되는 것 같아요.

    인기로든, 연기로든 배우에게는 어떤 흐름을 타는 때가 오는 것 같더라. 연기 10년차로서 주진모는 지금 막 그 흐름이 찾아온 게 아닐까?
    요 새 영화가 어려워요. 한창 상황이 좋을 때의 절반 정도밖에는 제작이 안 되고 있죠. 남들 한창 잘된다고 할 때 찾아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다들 힘들어진 상황에 나를 부르는 곳이 많다는 게 아이러니컬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하지만 야, 때가 왔다, 그런 건 없어요. 안심이 되는 건 있죠. 그 전에는 주연을 맡았다고 해도 더 가고 싶지만 절제할 수밖에 없었다면, 이제 내가 담고 싶은 정도의 사이즈로 담을 수 있는 주인공 역할을 할 수 있으니까.

    photographed by bo lee | 에디터 이지연 | 스타일리스트 김우리 | 어시스턴트 이승욱, 김주희, 김하늘(Visual Company) | 헤어&메이크업 민경원, 이경아(이가자 헤어비스) | 세트 디자인 박현주(포트콜린스)

    2006.09.18 MOVIEWEEK

    <두뇌유희 프로젝트, 퍼즐>주진모-성숙해지니, 행복해졌다

    이 사람, 아주 많이 ‘뜰’ 줄 알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잠시 보이지 않았다. 그리곤 최근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무척이나 잘생긴 배우로 기억했던 주진모다. 그런데 이 사람, 무척이나 속이 깊다. 어느새 성숙한 배우가 된 주진모. <두뇌유희 프로젝트, 퍼즐>로 돌아온 그를 <무비위크>가 만났다.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2001년 <와니와 준하> 이후 약간의 공백이 있다.
    3년 정도 쉬었다. <발해>라는 작품을 기다리다 무산됐었다. 그 후에 이왕 이렇게 쉬는 거 아예 쉬자고 생각했다. 당시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굉장히 힘든 시기였다. 여유를 가지면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가졌던 것 같다. 그때가 굉장히 큰 도움이 됐다. 그 시기에 사랑하던 여자친구도 있었지만 헤어지게 됐고.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이야기, 그거 맞는 말인 것 같다. 일적인 면에서도 사람 공부를 많이 한 것 같다.
    최근 작품들을 보면 과거와 확연히 달라진 점이 보인다.
    (황)정민이 형이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슛 들어갈 때만큼은 진실이라 생각해라”고 했던 것. 과거에는 연출자가 요구하는 방향만을 좇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생각했던 걸 말하지 않고서도 표현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분명 예전 방식보다 힘들긴 하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하는 게, 또 결과를 봤을 때 나 스스로도 만족스럽다. <두뇌유희 프로젝트, 퍼즐>(이하 <퍼즐>) 때도 그랬고, <미녀는 괴로워> 감독님도 흐뭇해 한다.
    <퍼즐> 기자회견 때 “혼자 하는 영화였으면 안 했을 것”이란 답변이 기억에 남는다.
    내 입장에 대해서 말한 것이였다. 나에겐 혼자 해서 책임감을 짊어질 수 있는, 아직 그럴 만큼의 인지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배우 주진모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다. 큰 흥행을 바랐다면 이 작품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이런 인터뷰 자리에도 없었을 거다.
    <퍼즐>은 18억 원의 순제작비로 만들어진 영화다. 한국영화 평균제작비와도 차이가 있다.
    요즘 시스템에선 하지 못할 일을 한 것 같다. 현장도 생동감 있게 잘 진행됐다. 제작비 여건상 총 30회 촬영횟수라는 제한이 오히려 배우들의 호흡을 유지할 수 있게 하고, 긴장감을 가진 채 작업에 임하게 한 것 같다. 이번 작품에서 함께한 배우들에 대해 이야기 좀 하자.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나도 한 3년 동안 배우 생활 안 했었지 않나. 그러다 다시 일할 때의 느낌, 무척이나 버겁고 적응하기 힘들었다. (홍)석천 선배, (김)현성이, (박)준석이 같은 경우 세 명의 입장이 비슷한 것처럼 보였다. 석천이 형의 경우는 커밍아웃하면서 힘들었던 것들이 눈에 다 있더라. 현성이도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이후 활동이 조금 뜸했었다. 준석이도 가수에서 연기자로의 전환점이 될 작품이라 긴장을 많이 한 것 같았다. 내가 세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건 함께 호흡할 수 있게끔 최대한 배려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앞에 두고 보니 무척이나 잘생겼다. 그런데 배우로선 그 외모가 부담이 될 수도 있겠다.
    말이니 말이지만 들어오는 역할이 한정되는 느낌이 들었었다. 흥행성이 있는 작품일지라도 내가 해야 할 역할은 조금 정돈되고 틀에 박힌 역할이 많았던 것 같다. 아직도 그런 편이다. 이목구비가 또렷한 배우들은 어떻게 연기를 해도 티가 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래서 예전엔 이런 부분이 참 힘들었다. 과거에는 외모적인 것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지만, 사실 지금은 그런 것에 별로 신경 안 쓴다. 내가 맡은 역할이 관객 혹은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 이상은 없는 것 같다.
    올해는 참 바쁜 해다. 영화 2편에 드라마까지 하니 말이다. 드라마 이야기 좀 해달라.
    <게임의 여왕>이란 드라마다. 이보영이 함께 출연한다. <불새>의 이유진 작가가 각본을 쓰는데, 트렌디 드라마라기보다는 정통 드라마에 더 가깝다. 얼마 전 뉴질랜드 촬영분량을 마치고 돌아왔다. 드라마의 경우도 극장에서 보지 못한 또 다른 모습들을 보여줄 수 있는 장이라 생각한다. 요즘 이 작품에 의욕이 불타고 있다.(웃음)
    남의 인생을 연기하는 배우로서,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
    작년에 점을 봤다. ‘신점’이라 부르는 것 말이다. 점쟁이가 나에게 “당신은 그 고집 때문에 못 큰 거야”라고 말했다. (이 작품이 뜰 것 같으니 이거 하자는 식의 조언들을 포함한) 남 말을 왜 안 들어서 갈 길을 막느냐고. 그가 말하길, 앞으로 사람들에게 인정 받으려면 실존 인물을 대신 표현해보라고 하더라. 꼭 그 말을 들어서라기보다는 실존 인물의 일대기를 다루는 작품이 있다면 한번 해보고 싶다. 과거에 <샤인>이란 영화를 너무 좋게 봤었다. 그런 작품을 하게 되면 진짜 마음속에서 생각했던 것에 제대로 빠져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지금 현재의 삶에 대해 간략히 말해주면 좋겠다.
    아직까지는 여러 장르, 분야의 작품들을 마음껏 해보고 싶다. 배우는 어떤 기회로 한 계단 올라서게 되면 역할이 한정되는 경우가 있으니까. 멜로, 누아르뿐만 아니라 코미디도 해보고 싶다. 이렇게 내가 하고 싶은 역할들을 할 수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 물론 경제적으론 좀 힘들지만 말이다. 하하. 그리고 진짜 예쁜 사랑도 하고 싶다.

    2004.04.21 MOVIEWEEK



    <라이어>주진모, 행복한 구라쟁이의 귀환


    <라이어>에서 주진모는 언제 터질까 조마조마하며 부는 풍선껌처럼, 수습할 수 없는 거짓말을 걷잡을 수 없이 늘어 놓는 정만철 역을 맡았다.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무궁무진한 거짓말을 끝없이 뱉어내는 그의 모습에서 예전의 주진모는 결코 찾아볼 수 없다.

    사람의 운명이란 얼마나 아이러니한 것인가. 간절한 소망과 우연한 기회의 엇갈림,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오늘이 될 미래. 군대 제대 후 막노동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도 보고, 도매업에 관심이 생겨 청계천에 가서 기계를 만져도 보고, 출판사 영업사원도 해 봤던 평범한 남자. 한때 공무원의 꿈을 안고 두달 동안 독서실에서 책만 보기도 했던 이 남자는 우연치 않은 기회로 전시회에 출품할 사진의 모델이 됐고, 그 사진을 본 광고 관계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미팅 좀 할 수 있을까요?” “네? 누구랑 미팅이요? 여자들이요?” “여긴 ○○ 프로덕션인데 광고 미팅 좀 하려고요.” 얼떨결에 광고 촬영을 마친 후 손에 들어온 100만 원에 ‘아… 이거 짭짤하네’라는 생각을 하면서 연예계에 발을 들이게 된 사람, 바로 주진모다. 1999년 <댄스 댄스>로 영화계에 혜성처럼 나타났던 그는 어느덧 일곱 번째 영화를 찍고 30대를 넘어서고 있다. 이제야 자신의 중심을 찾게 됐다는, 연기자로서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라는 주진모를 만났다.

    # 인터뷰 전날 <라이어>의 기자 시사회가 있었고 반응은 무척 좋았다. 주진모는 제작진과 술을 거나하게 걸쳤고, 오후 1시 인터뷰 장소에 나타난 그의 얼굴엔 덜 깬 취기와 함께 작품에 대한 만족감이 오버랩 되고 있었다. 그의 주목을 끈 것은 기자의 MP3 녹음기.
    이게 뭐예요? 전 이런 것들 잘 몰라요. 아날로그 식이죠. 디지털화 되는 것에 대해 생체 리듬이 거부를 해요. 핸드폰도 걸고 받는 기능만 있는 게 다시 나왔으면 좋겠어요. 하나에 몰입하면 그것만 바라보는 성격이거든요. 인터넷 하는 것보다는 책 읽는 게 좋아요. 요즘은 잘 안 읽지만. 책 읽을 때 빠지면 하루에 서너 권 씩 읽기도 하고, 편집증 같은 게 있어요. 낚시도 좋아해서 시즌 되면 한 달에 이틀 집에 들어가요. 한번 몰입하면 폭 빠져요. 배우라는 직업을 잘 선택한 것 같아요. 박카스 모델을 한 후 유인촌 선생님이 하시는 극단 유에 들어갔고, 주변의 멋진 선배들처럼 좋은 연기자가 되고 싶었어요. 한번 마음먹으면 그것만 보고 달리는 성격이기 때문에, 배우가 되기로 마음먹은 후부터는 그것만 생각했죠.

    # 2001년 <와니와 준하>를 찍은 후 주진모에게는 3년의 공백기간이 있었다. <발해> <방아쇠> <빅하우스 닷컴> 등 그가 함께 하려던 영화들이 연거푸 제작 중단이 됐고, 소속 매니지먼트도 바꿔야 했다. KBS 드라마 <고독>(표민수 연출, 노희경 극본)을 놓친 것도 3년 간의 공백 기간 동안이었다.
    <고독>은 정말 출연하고 싶었던 작품이었어요. 그 당시 제가 속했던 매니지먼트와 드라마 제작진끼리 말이 잘 안 통했나 봐요. 아쉽죠. 지금은 제가 원하는 작품을 선택할 수 있는 매니지먼트로 바꿨죠. 생각해 보면 지난 3년이 약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한 단계 성숙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생각하는 폭도 넓어지고 여유롭고 침착해졌어요. 책임감도 많이 느껴지고 일하는 것에 대해 심사숙고하게 되었어요.

    # 지난해 <때려!>(SBS)에서 이한새 역을 맡은 주진모를 보고 사람들은 말했다. “주진모가 진작 저랬어야 하지 않았나” “저렇게 귀엽고 인간적인 캐릭터가 잘 어울리는데 왜 이제까지 분위기 있는 역만 맡아온 걸까.”
    김경형 감독님이 절 처음 보고 하신 말씀도 그랬어요. 저 또한 답답했던 부분이었죠. 대부분 이미지로만 가는 역할이었어요. 한번쯤 저도 다른 돌파구를 찾고 싶었지만, 전작들에 대한 이미지 때문에 비슷한 시나리오들이 들어왔어요. 전 제 색깔이 확고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양하게 가고 싶어요. 그게 연기자 아닌가요.

    # <때려!>를 촬영하는 동안 주진모는 너무 바빴다. 매니저의 차에서 새우잠을 청한 뒤 다시 촬영을 하는 일상이 계속됐고, 그런 그의 앞에 시나리오는 쌓여갔다.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김경형 감독 역시 <때려!> 속 주진모의 눈빛에 반했고, 그에게 시나리오를 내밀었다.
    의외였죠. <라이어>의 시나리오를 보고 ‘이 역할은 차승원이나 임창정 같은 배우들에게 가있을 텐데 왜 나한테 왔지?’싶었어요. 감독님과 미팅을 하면서 물었죠. 왜 저였냐고. 김 감독님이 그러시더군요. 그런 분들과 함께 하면 감독님의 몫이 없다고요. 저와 같이 해서 뭔가를 만들어내고 싶다고요. 김 감독님 전작이 워낙 괜찮고, 씨앤필름도 탄탄하고, 대중 앞에 영화로 오랜만에 서 보는 것이기 때문에 의미가 남달랐어요. 스크린으로는 3년 만이니까 똑같은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어요. 남자답고 멋있는 역할도 있었지만 새로운 면을 보여드리고 싶었죠.
    # <라이어>는 인물 중심의 코미디다.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거짓말로 인물들은 모두 각자 다른 상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진모는 그 중심을 잡아야 했다.
    차라리 <무사>처럼 몸이 힘든 게 낫지 머리가 아프니까 미치겠더라고요. 인물간의 관계 파악이 가장 스트레스를 받은 부분 중 하나였어요. 예전에는 내 역할만 생각하면 됐지만, <라이어> 같은 경우는 상대 연기자의 분위기까지 받아들여야 했거든요. 어제 기자 시사로 완성된 영화를 처음 봤는데 쑥스러우면서도 놀랐어요. ‘나한테도 저런 면이 있구나.’ 옛날에 연극 <라이어>는 본 적이 있지만, 이 영화 작업에 참여하고 난 뒤에는 일부러 연극을 안 봤어요. 연극을 보고 나면 잔상이 남고 따라하게 될까 봐서요. 연극과 바뀐 것들이 있죠. 신장원이나 만철과 상구가 옥신각신 하는 7:3, 6:4 같은 비율이요.

    # 주진모의 상대역을 맡은 배우들은 공형진과 임현식, 손현주다. 자율적인 연기에 익숙한 베테랑 셋을 상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터. 하지만 주진모는 날고 뛰는 개성파 배우들 사이에서 꿋꿋이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킨다.
    처음에는 웅크린 듯한 느낌이 있었어요. 하지만 어떤 틀에 갇힌 사람들과 연기했다면 저 또한 이렇게 풀어지지 못했을 거예요. 그분들이 벌려놓고 가니까 저 또한 여유로워졌죠. 배우들끼리 함께 상승세를 탔던 것 같아요. 배우들 간의 상승세가 없었다면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을 뻔했어요. 시나리오를 보면 연극 대본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대로 갔으면 연극 무대를 카메라로 찍은 것밖에 안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거짓말하는 부분은 연극 톤으로 표현하고, 일상적인 부분에서는 리얼한 생활 연기를 했어요. 제 스스로가 너무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면 정만철은 정말 나쁜 놈이 되잖아요. 연극적인 연기와 생활 연기를 믹스시키는 게 포인트였죠.

    # <라이어>의 촬영 현장은 영화보다 더 웃긴 것으로 유명했다. 심지어 카메라 감독이 카메라를 켜 놓고 고개를 돌리고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너무 웃어서 누가 한번 웃으면 점심밥값 내기를 할 정도로 많이 웃었어요. 녹음하는 팀은 소리내면 안되잖아요. 심지어 녹음하는 애가 큭큭 거리고, 붐대 잡는 친구들도 고개 돌리고 있고. 형진이 형이 제 첫 번째 와이프 가슴 만지는 신에서는 너무 웃으니까 길게 찍은 다음에 안 웃은 부분만 커팅해서 집어 넣자고도 했어요. 현장이 좋으니 영화도 재미있을 수밖에 없었죠. 3∼4년 전에 인터뷰한 것 중에서 제가 가장 하고 싶지만 아직 할 시기가 아니라고 했던 장르가 코미디라고 한 적이 있어요. 기존에 우리 나라에서 히트한 영화들이 대부분 코미디죠. 하지만 채워지지 않은 빈자리가 많고, 보고 난 다음에 남는 게 없잖아요. <라이어>는 화려한 것들을 빼고 무척 절제했어요. 인물 간의 관계로 관객의 재미를 자극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죠.

    # 대개 한 두 달 정도 예상보다 촬영 기간이 길어지는 게 보통인 충무로의 관례에서 <라이어>는 한 발자국 벗어나 있다. 마치 할리우드나 일본의 영화 제작 시스템처럼 정해진 시간 내에 촬영을 모두 마친 것. 39회 차의 촬영 스케줄을 단 한번도 어기지 않았던, 김경형 감독의 치밀한 프리 프로덕션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중후반은 거의 세트 촬영이었죠. 한 달 반 동안 군대 생활하는 느낌이었어요. 항상 규칙적으로 아침 일곱 시에 기상해서 현장에 여덟 시 도착, 늦어도 밤 열 시 전에는 촬영을 끝냈거든요. 밤샘 촬영해서 지치는 모습을 볼 수 없었어요. 영화에서 배우들이 지쳐 보이지 않고 계속 리듬을 탈 수 있었던 게 감독님이 그런 스케줄까지 조정했기 때문이에요. 집중력이 높아졌죠. 처음에는 김 감독님의 진면목을 몰라서 움츠려 있었던 것 같아요. 김 감독님은 배우들을 풀어놓는 듯하지만 모든 것을 다 컨트롤하는 똑똑한 분이세요. 배우를 확실히 믿고 가면서, 자기 계산은 철저하게 되어 있는 천재 같아요.

    # 정만철은 양다리를 걸치고 사는 남자다. 도덕적으로 정말 나쁜 놈이긴 하지만, 그런데 이 남자 왠지 귀엽다. 그 정만철이 되었던 주진모 역시 이전보다 훨씬 밝아진 모습이다. 무뚝뚝하기로 유명한 그가 발랄하게 껌을 씹고, 깔고 앉은 공이 미끄러진다며 즐거워하고 있으니.
    실제로 양다리 걸친 적이 없다면 거짓말이죠. 그런데 지금 있으면 혼나죠. 지금 사귀는 친구를 만나기 한참 전에 한번 정도 그랬어요. 그런데 그건 양다리라고 볼 수도 없는 게 제가 좋아하는 친구는 내 마음을 안 받아 주고, 날 만나 주는 여자는 있었고. 마음은 저기 가 있는데 몸은 여기 있고. 하하. 아주 어렸을 때죠. 정만철은 실질적으로 보면 못된 사람이죠. 이 못된 놈을 영화에서까지 못되게 표현한다면 누가 재미있게 보겠어요. 만철에 대한 키 포인트는 ‘재미있고 귀엽게 보이자’였어요. 굉장히 머리 아팠다니까요. 사실 지금도 만철이가 된 것 같아요. 예전에는 하루에 열 마디 이상 안 했는데, <라이어>하면서 표정도 밝아졌어요.

    # 박지윤과 공동 주연을 맡은 한중합작 드라마 <비천무>를 위해 주진모는 중국으로 떠났다. 자신에 대한 솔직한 성찰은 오늘날의 그를 있게 한 열쇠다. 세탁은 했지만 다림질되지 않은, 닦긴 했지만 광 내지 않은, 자신감에 넘치지만 겸손한 모습. 주진모는 지금 행복하다.
    예전에 받은 개런티에 비하면 2/3 밖에 받지 않았어요. 보통 개런티가 내려가지는 않잖아요. 제가 받은 개런티보다 훨씬 더 잘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리고 <라이어>를 통해 확실히 보여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이젠 제 중심을 확실히 잡고 가게 됐어요. 때문에 여유 있어지고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눈이 생겼죠. 이게 20대와 30대의 차이인 것 같아요. 극 중에서 만철이가 한 말처럼 어떤 것도 부럽지 않아요. 지난 3년간 힘든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더욱 소중한 행복이죠. 여기서 더 행복해지려면 뭐가 있을까 싶을 정도예요. 이제 돈만 벌면 되지 않을까요? 후후.
    최미현 기자 2004.04.21

    2004.05 Vogue - Talking About






    배우는 끝없이 선택을 하고 선택을 받는 직업이다. 주진모는 모두가 남성판타지를 자극하는 레트로 블록버스터로 달려가는 지금, 전혀 다른 선택을 했다. 그가 ‘거짓말쟁이’택시 기사로 출연한 영화 <라이어>는 일상을 배경으로 한 사회 풍자라고 할 수 있다.


    창문 너머로 불어오는 바람에 흰 커튼이 주진모의 얼굴 위로 나부끼고, 그가 이마에 세 줄의 주름을 넣어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난 ENG 카메라의 빨간불이 끔찍하게 싫습니다. 저 스틸 사진기도 유쾌하진 않습니다. 최민식 선배가 사진은….” “배우의 영혼을 앗아간다고 했나요?” “네. 분명 그랬어요.” “거짓말입니다. 그는 얼마 전 내게 자신이 인디안도 아닌데 왜 그런 말을 했겠느냐고 하던데요?” “이상하군요. 내게 왜 그런 거짓말을 했을까요?”

    나는 주진모를 알고 있다. 낚시를 좋아하고(하지만 민물고기는 먹지 않기 때문에 잡은 고기는 전부 놓아준다),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주로 거울을 보고 대화한다), 정직하고 배려가 깊다. “나는 천재가 아닙니다. 엄청난 노력형이죠. 하루 아침에 스타가 된 행운아도 아닙니다.” 그는 군대에서 제대한 후 스물 세 살 때, 무작정 서울의 압구정동으로 갔다. “원당 촌놈이 막연한 꿈을 안고 난생 처음 압구정동이라는 신세계로 갔습니다.” 백수였기 때문에 버스비도 없었다. 그는 유씨어터라는 극단을 찾아가 아무거나 시켜달라고 했고 돌아올 땐 집까지 걸어왔다. “저보다 잘생긴 사람은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직업을 개척했고, 힘들게 여기까지 온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전통적인 공무원 집안이었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불완전한 직업’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전공도 하지 않은 일을 어떻게 하느냐’고 다그치셨어요. 전 ‘할 줄 모르지만 그게 제 꿈이에요’라고 말씀 드렸죠. 저는 꿈을 이룬 겁니다.” <해피엔드> 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고 나서야 아버지로부터 “저놈 배우 하라고 그래”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그동안 자신이 ‘너무 진지했다’는 걸 인정한다. 결혼한 유부녀의 아기용품까지 사놓고 사랑을 갈구하던 <해피엔드>에서의 과도한 집착처럼 그는 지독하게 영화에 매달렸다. 덕분에 영화계 인사들에겐 사랑 받았지만, 대중들에겐 모호한 인물이었다. 하루 만에 촬영을 끝낸 김기덕의 이벤트형 영화 <실제상황>이나 영하 40도의 혹한과 모랫바람 속에서 5개월을 촬영한 <무사> 는 대중들의 취향과 맞지 않았고, 김희선과 ‘동거’한 순정 영화 <와니와 준하>는 흥행 공식에서 비껴 있었다. <비트>의 정우성처럼 <친구> 의 장동건처럼 <말죽거리잔혹사> 의 권상우처럼… 대중들은 ‘청춘의 덫’에서 방황하는 꽃미남의 성장 영화를 원했으니까. “잘생긴 남자 후배들을 보면서, 나도 과거에 저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좀더 트렌디하게 가보지 그랬어요? 김기덕이나 박광수 영화에 일찍 도전했기 때문에….” “네. 그래서 어정쩡한 포지션이 됐습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사는 방식이 있죠. 대중적인 존재감은 드라마 <때려> 정도면 만족해요.”

    배우는 끝없이 선택을 하고 선택을 받는 직업이다. 주진모는 모두가 남성 취향의 레트로 블록버스터로 달려가는 지금, 전혀 다른 선택을 했다. <라이어>는 일상을 배경으로 한 사회 풍자라고 할 수 있다. 택시기사 만철은 우연한 사고로 지명수배범 서장원을 체포하지만, 그 때문에 무사하게 꾸려왔던 이중 생활이 들통날 위기에 처한다. 세밀한 시간표를 짜서 두 집을 왔다갔다 하던 일상에 구멍이 생긴 것이다. 주진모는 이 영화에 대해 약간 흥분한 듯했고 말 속도도 느렸다. “그건… 영국식의 탄탄한 소극장 연극을 바탕으로 한… 해프닝 영화지요… 저는 연극 배우로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카메라가 아닌 관객을 향해 과장된 표정과 몸짓을 보여주는 게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뭐죠? “거짓말 소동으로 ‘나는 누구인가’에 봉착하는 이 영화를 통해 배우로서의 나를 자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역을 제안 받았을 때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겉보기에 저는 그런 역에 어울리는 외모는 아니니까요.” 주진모는 다시 버릇처럼 퍼즈를 두며 말했다. <동갑내기 과외하기> 를 감독했던 김경형 감독은 ‘그의 잘생긴 외모엔 아웃사이더의 냄새가 난다’고 했다. “풀어지는 연기를 못하면 진지한 연기도 할 수 없어요. 물론 지금의 주류 영화와는 전혀 다른 선택이지요.”

    만철의 치밀한 거짓말 소동을 연기하는 내내, 주진모는 ‘힘을 주면 느끼해지는’ 외모의 딜레마에서 벗어났다. 은근한 유머, 카메라 프레임을 벗어나는 희극적인 몸동작… “예전엔 다섯 발자국 걷다가 카메라를 보고 대사를 친다, 이런 식이었어요. 모든 게 강박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서고 싶으면 서고, 앉고 싶으면 앉았습니다. 아무도 나를 제지하지 않았죠. 그래서 전혀 다른 자유를 누렸어요.” 가끔씩 등장하는 주진모의 연극적인 독백은, 그가 자유롭게 떠벌이다 만나는 일상의 해프닝과 연쇄 반응을 일으키고 관객에게 ‘공모자’의 즐거움을 준다. 이 영화는 재미난 소품이 될 것이다. “당신의 연기관이나 인생관도 변했나요?” “제 좌우명이 뭔지 아세요? ‘책임 있는 말을 하자’입니다. 누군가는 선의의 거짓말이 있다고도 합니다만, 나는 거짓말 자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정치인들은 어떻습니까?” “글쎄요, 그런 거짓말에까지 집중할 시간은 없습니다. 말씀 드렸듯이 나는 천재가 아니고 내 일만 하기에도 벅차거든요.” 그는 또 잠깐 퍼즈를 두고 말을 이었다. “사실 제가 어제 UFO를 봤습니다.” “정말이요?” “네, 정말 아름다운 거짓말이지요?” 그가 가지런한 치아를 빛내며 착하게 웃는다. “제가 좀 밝아 보이지 않나요?” 그는 스스로에게 유쾌한 주문을 건다. “네! 밝아서 눈이 부셔요.” 우리는 같이 웃었다. 그는 <로열 테넌바움>의 벤 스틸러처럼 아디다스 트레이닝 룩 차림이지만, 조금도 불안해 보이지 않는다. 영화 속의 인물과 비슷한 유일한 점은 그도 ‘좀도둑’을 잡을 뻔한 적이 있다는 것. 주진모는 SBS 드라마 <때려>를 촬영할 무렵 거리에서 소매치기를 만났다. 핸드백을 도난 당한 여성이 소리를 지르자 그는 전속력으로 소매치기를 뒤쫓았다. “권투 연습에 재미가 붙을 때였거든요.” 놀란 소매치기가 갑자기 넘어졌고 경찰이 그를 체포했다. 쫓아가던 주진모는 조용히 발걸음을 돌렸다. 그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그가 ‘쿨’하기 보다 ‘순수한’사람이라고 한다. “저는 저와 함께 일하는 주변 사람이 행복한 일만 하고 싶어요. 예전엔 실내에서 혼자 근육을 만드는 운동을 했어요. 지금은 인라인 스케이트, 야구, 축구… 사람들과 몸을 즐기는 운동을 합니다.”

    그는 여전히 거울을 본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처럼 까칠한 수염, 모공, 블랙헤드 같은 것이 보인다. 오늘 아침에도 그는 수염을 깎지 않았다. 그는 공백 기간 동안 팔도 강산의 물 있는 곳은 다 돌아다녔다. 낚시를 하고 다시 잡은 물고기를 놓아주면서, 거울 앞에서 “너는 왜 못해?”라고 자학하면서. 아마 그가 배우로서의 가치가 다소 애매해진 데는 그가 자신의 멋진 외모를 과시하지 않고 부끄러워 했기 때문일 것이다. “쌍꺼풀이 진해서 조금만 힘을 주면 느끼해 보여요. 코도 너무 높습니다. 스타일리시한 사람은 많습니다. 하지만 나는 <올드 보이>의 최민식 선배처럼 스타일리시한 연기를 원합니다. 혼자 낚시하면서 칼을 갈았어요. 그동안 난 너무 교과서적인 연기를 했습니다. 슬프면 슬프고, 기쁘면 기쁘고… 나 스스로 너무 불안해서 창조의 에너지를 막고 있었던 거죠. 이제 나를 믿고 깨뜨리고 싶습니다. 물론 틀릴 수도 있지만 다음 기회가 있으니까요.” 그는 일주일 후 한중 합작드라마 <비천무> 촬영을 위해 중국으로 날아간다. 그리고 영화 개봉일에 맞춰 또 들어오고. “휴! 중국은 음식도 심지어 물조차 맞지 않습니다. 촬영은 <무사> 때보다 1.5배는 더 힘들 테고. 다시 칼 잡고 각이 선 연기를 해야 하고. 그래도 흥분됩니다. 좋은 그림이 나올 때까지 더, 더, 더! 사서하는 고생이 즐겁습니다. 정말로.”

    에디터 / 김지수 의상 / 김서룡 옴므

    2007-10-02 Premiere No. 29




    10년 동안, 주진모는 영화잡지 표지 모델에서 번번이 까였다. ‘주진모는 아직 그런 짬밥이 안돼!’암암리에 들려오는 이유였다. 그는 고집스러울 만큼 각을 세우고 살았다. 안전한 작품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주진모’를‘배우’로 인정해 주는 시선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주진모는 스스로 달라졌다. 조바심 내지 않았다. <사랑>은 그런‘주진모’에게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작품이다. 그에게 <사랑>은 바로‘올인’이다.

    ALL IN LOVE 주진모



    <사랑> 주진모
    우선, 캐스팅 얘기를 자세히 듣고 싶다. 흥미롭게도 장동건 씨가 연관돼 있더라.
    < 미녀는 괴로워>가 반응이 좋았던 때라 어떻게 보면 시나리오를‘고르고’있었다. ‘내 취향에 맞는 시나리오보다 이제는 대중적인 스타일의 시나리오를 골라야 되지 않을까’생각했다. 물론, <미녀는 괴로워>와 똑같은 스타일은 배제했다. 근데 마땅한 시나리오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 회사(그의 소속사이기도 한, ‘KM 컬쳐’)에서 준비하던 시나리오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김종현 감독이 연출하는 영화인데, 그 형도 김용화(<미녀는 괴로워>) 감독과 똑같은 시기에 알게 됐다. 


    <미녀는 괴로워> 때와 같은, 말하자면 의리를 지키는 출연?
    (미소) 그러다 (장)동건 형이랑 친하니까, “오랜만에 밥이나 먹자”해서 형 집에서 밥을 같이 먹고 있었다. 


    밥은 직접 해 먹었나? (웃음)
    아 니, 시켜 먹고 있었지. 근데 식탁 위에 시나리오가 쌓여 있었다. 나한테 들어온 시나리오가 <미녀는 괴로워> 같은 로맨틱 코미디류였다면, 동건 형은 워낙 대스타니까 모든 장르의 시나리오가 다 들어와 있지 않았겠나. 사실 몇 년을 알고 지낸 사이지만, ‘형, 좋은 시나리오 있으면, 나한테 좀 보여줘’같은 얘기는 한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근데 그날은‘사랑’이라는 제목의 시나리오가 눈에 탁 띄는 거다. 그래서 “형, 저 책은 뭐야?”하고 물었다. 형이“어, 곽경택 감독이 요번에 새로 준비하는 거야.”그러고서 형이 2초 정도 생각하더니“너 한번 읽어볼래? 너랑 잘 어울리겠다”하는 거다. 


    왠지 드라마틱하다.
    내 가“형은 재밌게 봤어?”물으니까“어, 곽경택 감독이 <태풍> 이후에 새로운 마음으로, 대중들한테 어필할 수 있는 작품을 쓴 거 같아”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순간, “형, 읽어봐도 돼?”소리가 바로 튀어나왔다. “어, 읽어봐”해서 밥 먹다 말고 손에 잡았다. 형이 밥 다 먹고 설거지 하는 동안, 나는 머리 속에서 영화 한 편을 다 그리면서 읽었다. 


    혹시 그런 적 처음인가?
    (고 개를 끄덕이며) 작품에 그렇게 빠져보기는 처음이다. 시나리오를 덮는 순간, ‘아, 이건 내 건데, 이건 내가 해야 되는데, 너무 자신 있는데…’생각이 들었다. 캐릭터에 정말 동화돼 있었다. 형한테“이거 누가 하기로 돼 있냐?”고 물었다. “내정돼 있는 배우가 있긴 있다. 아직 결정된 건 아니지만, 얘기는 다 끝난 상황인 거 같다”고 하는 거다. 그런데도 집요하게 “그래도 계약서에 도장 찍은 건 아니지 않냐?”는 식으로 형한테 말했다. 결국 곽경택 감독한테 내 얘기가 전달됐다. 


    내정돼 있던 배우는 누구였나?
    녹 음기 끄면 얘기하겠다. (웃음) 그러고 일주일 뒤, “다른 배우가 할 것 같다. 내일 모레 도장 찍기로 했다.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 하자”라는 답변이 왔다. 순간 하늘이 노래지고,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다른 시나리오는 읽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마음 추스르려고 혼자 낚시를 갔었다. 한 이틀 정도 보냈는데, 참 이상했다. 


    뭐가?
    낚 시 하면서도, ‘그 시나리오는 내건데, 내가 이렇게 쏠려 있는데, 누가 그만큼을 과연 뽑아낼 수 있을까’생각하면서 막 억울해 하고 있었다. 근데 이틀 뒤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핸드폰을 켜니까 전화가 와 있었다. ‘<사랑> 팀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고, 매니저가‘빨리 오라’고 난리였다. 그래서 바로 짐 싸들고 서울로 올라왔다. 만나서 얘기를 들으니까 원래 얘기 됐던 배우가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못하게 됐다는 거다. 


    뭔가 감동적이다…. (웃음)
    감 독님이 <사랑>은 멋 부리는 영화가 아니라 그만큼 열정이 있어야 풀어갈 수 있는 작품이라고, “진모로 가!”했다는 거다. 다른 스태프들도‘의욕도 있고, 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고. 감독님 뵙자마자“고맙습니다. 저 내일부터 뭐하면 되죠?”했다. 사실 인터뷰라서 자세히 얘기하는 거지 캐스팅에 대해서 나도 감독님도 그 전 상황은 꺼내본 적이 없다. (중략)


    atyu.c

    곽경택 감독의 전작들 중에 혹시 캐스팅 때문에 접촉했던 작품은 없었나?
    한번도 없었다.

    왠지 의외다. <사랑>을 봤기 때문인지 곽경택 감독과 잘 맞는 배우 같은데. (웃음)
    사 실‘곽씨 집안’과는 인연이 깊다. <해피엔드> 때 정지우 감독 와이프가 곽 감독님 동생분이지 않나. 그 분은 내가 다음에 했던 <와니와 준하> 때도 제작에 참여했다. 그러다 이번에 곽 감독님하고 작업하게 된 거고. <미녀는 괴로워> 때 김용화 감독이랑 정말 호흡이 잘 맞았다. 형, 동생 사이가 돼서 정말 허물없이 얘기하다 보니 그만큼 디테일한 표정이 나왔었다. 근데 <사랑>은….

    그보다 더했던 건가? (웃음)
    그치, <미녀는 괴로워> 때와 달리‘주진모’라는 인물이 중심이 돼 풀어가는 영화가 아닌가. 현장에서 정체되는 시간이 없었다. 워낙 감독님이 생각하는 거나 내가 생각하는 게 일치했기 때문이다. 신이 났다. 정말 신이 났다. 그래서 크랭크업 후에도, 촬영장에 또 가야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올인 했다고 할까. 내가 현재 갖고 있는 능력을 모두 뽑아내려고 한 거 같다. 영화 봤으니, 어떤 거 같나?

    아… 음…. (웃음)
    이전의‘주진모’라는 배우와는 많이 다르지 않았나? 진짜 이번 영화에선 그렇게 보였으면 하는 희망이 있다. ‘주진모’라는 배우는 얼굴, 이미지로만 가는 배우가 아니라 정말 연기도 하는 배우, ‘주진모의 재발견’이면 좋겠다고 할까. 사실 나는 왜 남들이 바라고 동경하는 이미지로만 국한돼야 되는지, 계속 답답한 마음이 있었다. 근데 <사랑>에서‘인호’는 그런 동경상의 대상으로 보일 수 있는 부분에서도, 편하게 다 바꿔 버렸다. ‘인호’가‘경호원’일 때 부분 말이다. 그 때조차도 멋있게 보이려고 한 적이 한번도 없다.

    맞다. 그거 느낄 수 있었다. (미소)
    고맙다! (미소)
    (중략)

    곽경택 감독은 남자 배우들에게서 뭔가 끌어내는 능력이 있는 걸까?
    (고개를 끄덕이며) 감독이 일부러 억지로 시키는 건 아니다. 그건 나뿐만 아니라 먼저 작업했던 형들을 봤을 때도 느끼는 건데, 감독이 잘해주기도 하지만, 배우들 스스로의 노력도 분명 있는 것 같다. 감독님은 현장에서 그 신의 상황적인 느낌만 간단히 얘기해 주고 배우에게 맡긴다. ‘레디, 액션!’, ‘컷’이런 것도 없다. 어떨 땐 필름이 돌고 있는 건지 어떤 건지도 모르는, 약간 멍한 상태에서‘오케이, 컷’한다. 정말 연기자로 하여금 피를 돌게 하는, 특이한 방식의 촬영을 하는 것 같다.

    아, 그래서 김민준 씨도‘치유된 느낌’이라고 했나 보다. ‘주진모’는 <사랑>으로 적어도 스스로 확실히 변한 것 같다.
    감 독을 정말 믿다 보니 생각하는 폭이 없어졌다. 그냥 아예 백지장 상태에서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봤다. 사람이기 때문에 누군가 지켜보면 이 연기가 맞나 안 맞나 의심하게 되지 않나. 근데 이번엔 나를 의심하지 않았다. 의심하지 않으니까 표현하는 느낌도 달라지고, 인물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것에 대한 걸림돌이 없어졌다.

    그 정도까지였을 줄이야…. (웃음)
    여태까지 해보지 않았던 역할이라 더 욕심이 생겨서 그랬던 것도 같다. 감독님이 처음부터 말했다. “네가 기존에 인상 팍 쓰고 하는, 마네킹 같은 표정은 이 영화에선 없을 거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 연기 방식이라면, 지금부터 빨리 없애라”라고. 나도 시나리오 읽으면서 나를 바꿀 수 있겠구나, 라고 굳게 믿었다.

    곽경택 감독과 술자리에서, 인간적으로도 친해진 건가?
    어휴, 무지 오래 갈 것 같다. 무한 신뢰가 간다. 이쪽 업계는 무척 냉정하다. 오늘의 식구가 내일은 적이 될 수 있다. 근데 정말 믿을 수 있는, 또 한 명의 내 편을 만든 것 같다. (중략)

    흥행대작인 <미녀는 괴로워> 이후 신작이긴 하지만, 지금‘주진모’는 흥행보단 평단의 반응에 마음이 온통 가 있겠다.
    맞 다. 사실 흥행이 걱정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것보다‘배우’라는 얘기를 듣고 싶다. 주진모라는 이름 앞에‘<사랑>의 주진모’라는 수식어가 붙여졌으면 좋겠다. 나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어지고,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고 싶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일단, 내일 기자 시사회에서 영화 다시 보겠다.

    *자세한 내용은 프리미어 본지 29호(10.1~15)에서 확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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