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전에는 여배우만 띄우는 배우란 소리를 자주 들었어요. 늘 아쉬움이 남았죠. 영화나 드라마 하면서, 더 가고 싶은데 더 갈 수 없는 부분들이 있었고. 지금 나이 아니면, 이런 역할 언제 또 해볼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스스로도 꽤 만족스러워요.
근작인 ‘미녀는 괴로워’와 ‘사랑’에서 맡은 각각의 캐릭터가 배우 입장에서는 상반될 수 있었을 것 같다.
테 크닉적으로는 ‘미녀는 괴로워’ 편이 더 어려워요. 보기에는 쉽지만, 김아중의 캐릭터가 만화적인 만큼 나는 인물의 디테일을 살려 현실성을 부여해야 했어요. 그래야 밸런스를 맞출 수 있으니까.‘미녀는 괴로워’의 상준은 이상적인 인물이 아니에요. 여자 때문에 변화해가는 모습을 그려야 했고, 연기하는 입장에서 힘들었어요. 그에 비해 ‘사랑’은 영화적 장치들로 풀어주는 부분이 거의 없다는 게 어려웠죠. 연기로 끌고 나가야 한다는 심적인 부담이 컸거든요. 카메라 앞에서 진정성만 있으면 된다고 믿고 찍었어요. 내가 진실성을 못 느끼면, 관객들도 느낄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랑’은 투박하고 촌스러운 구식의 마초 영화다. 그런 사랑,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영화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첫 사랑에 대한 꿈은 누구에게나 있어요. 특히 남자들한테는. 하지만 그 사랑이 모두 영화 같지는 않죠. 역할에 빠져들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했어요. 보는 사람들이 대리 만족을 느낄 수 있으려면 내가 믿어야 하니까 최면을 거는 거죠. 영화 개봉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실 ‘사랑’에 등장하는 얘기는 실화예요.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살인한 남자의 얘기와 대기업 회장의 여자와 사랑에 빠진 비서실장이 자살한 여자를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남자의 얘기를 합해서 하나의 얘기가 된 거죠. 그 얘기를 들은 다음부터는 캐릭터에 몰입하기가 훨씬 쉬웠어요.
영화 종반부에 ‘여자는 순간’이라는 회장에게 인호는 ‘저는 아닙니다, 어르신’ 하고 죽으러 간다. 회장 역의 주현이 느낀 감정은 자기는 가져보지 못한 사랑을 가진 남자에 대한 질투였을까?
인 호는 그 장면 하나를 위해 영화에 등장하는 건지도 몰라요. 나도 내 여자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 경험이 있어요. 불투명한 내 미래 같은 것들이 용기를 잃게 했죠. 지금 다시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용기가 생길 것도 같아요. 사실 영화 찍고 힘들었어요. 오늘 촬영하러 열흘 만에 집에서 나왔어요. 애써서 넣어뒀던 감정이나 기억을 끄집어내는 게 힘드네요.
이 영화, 성에 관한 영화가 아니에요. 사람에 관한 영화죠. 하지만 용기가 필요했던 건 맞아요. 이 영화를 끝내고 나면 장담하지만 달걀이 되든, 병아리가 되든 뭔가 큰 변화가 있을 거예요.
작년과 올해는 배우 주진모에게 변화가 많았던 해다. 같은 곽경택 영화에 출연했다는 것 말고도, 장동건과 주진모는 잘생긴 외모 때문에 손해를 본 배우들이란 공통점이 있다.
20 대 때는 멋있는 역할이 좋았어요. 더 이상은 아니에요. 배우는 대중의 기대를 배신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맞는 얘기란 생각이 들어요. 모험하는 배우들이 오래 한다면서요. 배우 오래 하고 싶어요. 사람들이 저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대요. 그래야 궁금해서 오래도록 나를 쓰죠(웃음). 그리고 천성적으로 사람들 앞에 연예인으로 나서는 걸 잘 하지도 못하고.
솔직히 당신의 열혈 팬도 아니고, 당신을 보려고 그 영화들을 봤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주진모의 연기에 눈이 갔던 영화들이 꽤 있다. 캐릭터를 전형성에서 비껴나게 해주는 디테일은 누구의 아이디어에 기초하나?
콘 티대로 연기하면 되는 역도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 웃을지 울지가 궁금해지는 역도 있어요. 그런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얘기하고 디테일을 만들어가는 편이죠. 감독 머릿속에 그려지는 캐릭터의 모습이 있어요. 그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를 같이 알아가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당신이 연기했던 캐릭터 중에는 ‘정말 나쁜 놈’이 없다.
악 역에도 이유가 있으니까요. 왜 나쁜지에 대한 이유가 없으면, 제대로 연기할 수가 없어요. 시나리오를 고를 때 배우들이 가장 많이 보는 부분은 인물의 당위성이에요. 그러니까 정말 나쁜 놈은 없어요. 그런데 현실로부터 동떨어져 있는 인물이 너무 많아요. 열심히 쓴 책으로 연기하고 싶은 거죠.
1남 3녀의 막내예요. 수줍은 많은 애였어요. 아마 내 안의 여린 부분을 숨기려고 하다 보니까 오히려 남자처럼 구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나는 강한 남자가 아니에요. 내가 누군가에게 나빴던 기억들은 잊지를 못하겠어요.
주진모에게 배우는 좋은 직업인가?
20 대 때 ‘오빠’ 하는 비명 소리 좋았죠. 아직까지는 행복해요. 그런데 어려워요. 역할 하나를 맡으면, 거기서 벗어나기가 너무 힘들어요. 주변 사람들이 너 요즘 말투랑 행동이 바뀌었다고 할 정도니까.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스케줄 없을 때는 외출도 잘 안 하고, 외롭기도 하고, 내가 우울증에 걸렸나, 아니면 귀차니스트가 된 걸까 생각할 때도 있어요. 덕분에 감성 지수는 높아져서 연기를 하기에는 좋지만 사회성이 점점 떨어지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해요.
주진모가 생각하는 배우 주진모의 단점은?
복잡한 걸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
그건 장점인데?
배 우들은 약아야 해요. 꺾이고 나면, 다른 쪽으로 선회할 수도 있어야 하는데, 헤어나지 못하고 고수하는 건 장점일 수 없으니까. 배우라는 직업을 계속하면서 주변에 사람들이 줄어든다는 것도 그런 성향을 키우는 이유가 되는 것 같아요.
인기로든, 연기로든 배우에게는 어떤 흐름을 타는 때가 오는 것 같더라. 연기 10년차로서 주진모는 지금 막 그 흐름이 찾아온 게 아닐까?
요 새 영화가 어려워요. 한창 상황이 좋을 때의 절반 정도밖에는 제작이 안 되고 있죠. 남들 한창 잘된다고 할 때 찾아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다들 힘들어진 상황에 나를 부르는 곳이 많다는 게 아이러니컬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하지만 야, 때가 왔다, 그런 건 없어요. 안심이 되는 건 있죠. 그 전에는 주연을 맡았다고 해도 더 가고 싶지만 절제할 수밖에 없었다면, 이제 내가 담고 싶은 정도의 사이즈로 담을 수 있는 주인공 역할을 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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