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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인이자 감독인 유하가 어찌하여 고려궁중남녀상열지사에 눈을 돌리게 되었는지는 누구에게도 전해내려 온 바 없다. <말죽거리잔혹사>와 <비열한 거리>에 이어 ‘청년 성장 잔혹사 3부작’을 만들고자 했던 감독 유하. 어느날 그의 뇌파에 ‘사극’의 시공간이 폭풍처럼 휘몰아쳤고,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눈을 떠서 주위를 돌아보니, 시대는 고려, 장소는 궁중, 그가 비호해 마지않던 ‘청년’은 왕 앞에서 긴 칼 차고 머리를 조아리는 호위 무사가 되어 있더라. 오호라! 이곳은 비열한 정치와 편향적 성애가 뒤섞여 청년들의 페니스를 조기 거세시키는 ‘비열한 궁중의 거리’. <비열한 거리>에서 어떻게든 생활을 꾸려가려던 치열한 건달 조인성의 뒤를 봐주던 ‘비정한’ 어른 천호진의 권력은, 고려왕 주진모가 이어받고, 두 남자 사이에서 청초하게 피어 가련하게 소비되는 여성은, 원나라에서 온 왕후 송지효가 이어받은 셈이 아닌가. 고려왕 주진모는 화려한 왕관을 썼으되, 밖으로는 원나라의 섭정과 안으로는 신하들의 반정 모략으로 아슬아슬한 칼날 위를 걷고, 그를 호위하는 친위부대의 무관 조인성은 오로지 왕을 위해 태어나고, 왕에 의해 키워지고, 왕이 없으면 죽어질, 바람 앞에 등불 같은 ‘왕의 남자’일 터. 그리고‘왕의 남자’ 조인성과 ‘왕의 여자’ 송지효가 동침하게 되자, 이 고려궁중상열지사는 ‘금지된 외도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마치 ‘천일의 앤’과 ‘헨리 8세’의 피비린내 나는 영국사처럼 고려 궁중에 ‘사랑과 배신’의 피바람을 불러왔을 것이다. 영화의 제목인 <쌍화점>은 동일한 고려가요 ‘쌍화점’에서 따온 것으로, 고려 충렬왕 때 궁궐에서 부르기 위해 만들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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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쌍화점>을 끝내고 처음 바깥 세상으로 나온 그에게는 청년이라 이름 붙일 만한 싱그러운 패기도 남성성의 팽창도 없다. 세기말 비엔나 시대의 퇴폐적인 예술가처럼 ‘성이 거세된’ 건조한 야성만이 남아 있다. 그에게서는 마치 불가사의한 의도를 품은 어떤 냉혹한 힘이 지키는 침묵이 잔재처럼 남아 있었다. 자신이 가지 못한 것에 대한 질투와 선망이 담긴 ‘인간적인’ 아름다움 때문에, 가지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해 돌부리를 걷어차며 울고 가는 어린아이 같은 분노 때문에, 감독은 그리고 관객은 그에게 연민을 느낀다. 유하 감독은 그를 성장시킨 영화 인생의 스승이다. <비열한 거리>에서 유하 감독은 조인성을 몇 가지 성분으로 나누어 보여준다. 고교 동창들 앞에서, 잘보이고 싶은 여자 친구 앞에서, ‘가오’ 잡고 거두어야 할 건달 후배들 앞에서, 자신의 밥줄을 쥐고 있는 권력자 앞에서, ‘청년’ 조인성은 ‘착하게’는 못 살아도 ‘제대로’ 좀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영웅은커녕 영화 전편에 물리적 정서적 굶주림이 가득한 이 영화에서 조인성은, ‘살아남기 위해’ 보스를 배신했지만, 그 대가로 절친한 친구와 믿었던 후배에게 두 번 배신 당한다. 영화 <초록물고기>의 젊은 한석규처럼, 조인성도 조직생태학의 밑바닥 먹이사슬이 그러하듯 ‘개죽음’을 맞는다. <비열한 거리>가 끝난 후에도 한동안 조인성은 칼 비린내를 풍기며 짧은 ‘조폭’ 머리를 하고 마초처럼 건들거렸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쌍화점>에서 나온 그는, 가시덤불 같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수염이 없는 소년 같은 용모로 ‘휘청거리며’ 쓰러질 것처럼 걷는다. 다소 인위적인 그의 불안은 다른 모든 불안과 달리 행복감을 절정으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그것을 점점 더 위태롭게 흔들어놓고 있는 듯 보였다. “네. 저는 혼돈을 겪는 중입니다. 그리고 그 상태가 심해질수록 육체적으로는 드라이해지지만, 정신적으로는 명랑해져 가고 있다고 느낍니다. 제가 읽고 있는 책을 한번 보시겠습니까? 오에 겐자부로의 <회복하는 인간>… 여기 밑줄 친 대목을 제가 읽어드리죠. ‘지적인 명랑함. 앞으로 그가 복용하는 약은 늘어날 테고 말수는 줄어들고 잠은 못 자겠지만, 지적으로는 점점 더 명랑해졌다.’ 이게 현재 제 상태입니다. 놀라시는군요. 이렇게 사색적으로 제가 공부를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배우들은 다 ‘~한 척’하는 인생들이에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게 시시하게 느껴집니다. 아는 걸 넘어서 이해하기 시작하면 ‘~한 척’하지 않아도 되죠. 아는 건 TV장학퀴즈에 써먹으면 됩니다. 알고 이해해야 지식을 부릴 수 있죠. 아는 데 머무르고 싶지 않아서, 내가 알고 싶어 하는 건 이해하고 싶어서, 좋은 맥락으로 나이 먹고 싶어서 애를 쓰고 있습니다. 네, 제가 ‘맥락’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앞서 ‘상태’라는 말도 했지요. 그건 현재 제게 무척 중요한 어휘들입니다. 어떤 상태로 살고 있는지가 배우의 연기에서 흘러나오더군요. 반대로 어떤 맥락에서 연기했는지가 배우의 현재 상태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한양대 안민수 교수님이 말씀하셨어요. “배우는 곧 그 상태다!” 저는 전형적인 메소드 연기자입니다. 네, 저는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7~8년간 연기 선생을 모시면서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 메소드는 무대 위의 인물을 내 몸과 마음에 일체화시키는 작업입니다. 저를 보세요. 스타일이 몰라보게 바뀌었지요? 약간은 퇴폐적이고 우울하고 성적으로 모호해졌습니다. <쌍화점>의 미소년 친위부대, 동성애 코드가 있는 무사 ‘호림’을 연기하고 나서죠. 유하 감독과 저는 시나리오 초고 단계에서부터 많은 대화를 나눴지요. 동성애, 베드 신, 거세 등등. 촬영이 끝나고 나니 저의 모든 취향이 아방가르드하게 바뀌어 있더군요. 전 세계 디자이너들 중에 게이 디자이너들의 비중이 크다는 건 아시죠? 그리고 남자도 여자도 아닌 그들이 패션계에 전혀 새로운 상상력을 증폭시키고 있지요. 저는 고정관념이 없는 그들의 패션을 맘껏 받아들여볼 생각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저는 현재 제 몸을 건조시키는 중입니다. 세상 기름을 다 빼내고 싶습니다. 세상을 다 안 것 같은 오만과 자만과 거드름 같은 것들이요. 제가 이런 말을 하니 놀라시는군요. 좋은 대화는 좋은 연기와 마찬가지입니다. 서로가 좋은 귀를 가질 때 좋은 이야기들이 오가는 거죠. 저는 더 많은 소울 메이트, 소울 티처를 원합니다. 유하 감독은 제 스승이셨지요. 그리고 <비열한 거리> 이후 우린 영화 동료가 됐습니다. 사람들은 젊은 연기자가 연기를 못하면, ‘형편없는 배우’로 깎아내리지만, 유하 감독은 달랐어요. “배우가 연기를 못했다면 그건 시나리오의 문제지”라고 배우를 두둔했지요. 저는 그분 때문에 조금은 덜 외로워졌습니다. 맞습니다. 관객들은 제가 브라운관에서, 스크린에서 ‘안간힘’을 쓸 때 찬탄이 아닌 연민과 감동을 받는 것 같습니다. 제가 철철 피를 흘리고, 가슴을 붙잡고 오열할 때 말입니다. 제가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디카프리오, 정우성, 양동근 같은 배우들. 타고난 게 많아서 가만 있어도 빛이 나는 사람들. 저는, 저로 말할 것 같으면 뭔가를 있는 힘껏 표현해야 약간 멋있어지는 타입이지요.
유하 감독은 저를 다룰 때 마구 궁지에 몰아넣었다가 풀어놓곤 합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렇게 말하죠. “할 수 있어. 쉬워. 못하겠니? 나이가 어려서 그런가?” 그러면 저는 오기가 나서 감독의 ‘OK’ 사인이 날 때까지 지옥까지 달려가는 겁니다. 어쩌면 연기에서 어떤 부분의 성취는 ‘헝그리 액터’가 이뤄낸 것일지도 모릅니다. 배부른 연기보다 배고픈 연기가 갖고 있는 ‘광기’가 있어요. 저는 배고픈 연기자였습니다. 제가 일하던 시절은 IMF 시절이었고, 가난이 어떻게 삶을 부숴놓는지를 경험했어요. 사내가 돈이 없으면 사람을 피하고 주눅들어 버리죠. 배우의 꿈을 놓았다면, 태권도 관장이라도 돼 있을 겁니다. 직업을 가져야 언젠가 다시 꿈을 논할 수 있으니까요.
<쌍화점>은 결국엔 궁을 벗어날 수 없는 소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릴 때부터 궁궐에서 왕의 총애를 받고 자라, 거기서 이성에 눈을 뜨고, 왕의 여자를 범하고, 원나라와의 파워게임에 휘말리고… 저는 마치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같은 갈등을 느낍니다. 왕의 사랑과 왕후의 사랑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관객들이 부디 저의 연기를 좋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대사를 잘 하는 배우가 아닙니다. 감정이 눈으로 와서 그 다음에야 입술로 전해지죠. 데뷔 초까지 제 입술은 너무 빨개서 오해를 받곤 했는데, 지금은 약간 색이 바랬습니다. 네, 저는 TV와 잘 맞는 멜로 배우이기도 했어요. <별을 쏘다>와 <봄날>에서 전도연과 고현정이라는 당대의 여배우들을 만났죠. 눈으로도 입으로도 유연함과 멋진 에너지를 발산하던 여배우들. 그리고 최근 몇 년 동안 제 몸의 아드레날린을 발산할 어떤 절정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한동안 쉬었지만 답을 찾지 못했어요. 의리? 동성애? 글쎄요, 제게 필요한 현실적인 아드레날린은 여자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떤 여자가 저의 현재 상태 이런 ‘뒤죽박죽 지적인 명랑함’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라이터 불이 확 타오르더니 주위를 집중하고 있는 이 기이한 ‘성년’의 마른 얼굴이, 진한 눈꺼풀과 앙상한 가슴팍이, 약간 퀭하고도 공허한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도 가슴뼈에 꽂힌 칼날이 빠지지 않은 것 같았다. 그가 담배를 몇 차례 힘차게 빨자, 담배의 조그만 불꽃이 규칙적으로 타올랐다 사그라졌다 하면서 그의 얼굴에도 빛과 그늘을 드리웠다. 조인성은 사진 촬영 도중에 혼자 울었다. 실로 아름다운 얼굴이지만, 그 홀로 완전한 얼굴이 아니었다. 조인성의 얼굴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질투와 선망이 담겨 있어서 더욱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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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진모는 2001년 영화 <무사>에서 중국 사막을 달리는 고려 장군 최정을 연기했다. 올해 초 공개된 한중합작 드라마 <비천무>에서도 고려 자객 자하랑을 연기했다. 그리고 2008 하반기 최고의 대작 유하 감독의 <쌍화점>에서는 호위 무사 ‘하림’을 사랑하는 고려 왕을 연기한다. 장군, 자객, 임금… 주진모만큼 동일한 시대극에서 혹은 그 밖의 다양한 작품에서 주요 배역을 맡았으면서도, 연기적 ‘표상’을 한번에 정의 내리기 힘든 배우도 드물다. 주진모는 얼마전 김아중과 함께한 영화 <미녀는 괴로워>로 대중적 사랑을 받았지만, 그 전까지는 ‘미남은 괴로워’라는 말의 대표적 피해자로, 어쩌면 그의 코가 1mm만 낮았더라도, 영화계의 필로그래피에 지각 변동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장 동건은 지나치게 잘생긴 외모 때문에 초기에 TV 전용 배우로 전락할 뻔했지만, 결정적으로 <친구>의 곽경택 감독 덕분에 강렬한 성격 배우로 자리 잡았다. 정우성은 <비트> 김성수 감독의 페르소나로, 영화계의 ‘미남’ 징크스를 깨고, 일찌감치 톱 스타로 군림했다. 영화계 사람들은 외모와 실력과 성실성을 갖춘 배우로서 주진모를 인정했지만, 그의 강한 실험 정신이 작가주의 감독들에게 영감을 주지는 못한 것 같다.
몇 년 동안 나는 주진모를 세 번 만났다. 2001년 김성수 감독의 <무사> 촬영이 끝났을 때, 그는 호위 노예 ‘여솔’을 연기한 정우성과 나란히 <보그> 지면에 등장하며, ‘누가 누가 잘생겼나’를 겨루는 전도유망한 청년 배우였다. 2004년 연극을 영화로 만든 <라이어>에서 택시 기사를 연기했을 때는, 그는 진지함과 갈증이 절정에 달해 있었지만, 이 라이트한 할리우드식 하우스 스크루볼에 관심을 기울이던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게 문제였다. 어떤 관객이 그토록 높은 코를 가진 남자가 택시 기사 제복을 입고 자가당착에 빠져 허우적대는 꼴을 보길 원하겠는가. 내가 보기에 그당시 주진모에게 필요한 건 성실성이 아니라 자신감, 진지함이 아니라 뻔뻔함이었다. 그 자신, 스스로의 외모를 부담스러워했기 때문에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기억 의 카메라를 더 과거로 돌리면 그는 데뷔 초기에 두 편의 문제작에 출연했다. 1999년 정지우 감독의 <해피엔드>와 2000년 김기덕 감독의 <실제 상황>. 주진모라는 배우가 가진 에너지의 자장을 가장 깊고 넓게 파고든 문제작 <해피엔드>에서 주진모는 전도연을 불륜의 파국으로 이끄는 ‘불안한 수렁’을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뿔테 안경과 덥수룩한 수염으로 그의 수려한 골격을 뭉개버리고서야 가능한 일이었지만. 주진모를 탈피한 주진모라고나 해야 할까. 김기덕 감독과 작업한 <실제 상황>이 매스컴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은 데는 단 3시간 만에 촬영을 완성한, 기네스북 감의 제작 방식 때문이었다. 러닝 타임은 총 1백분. 작가적 치기로 완성된 김기덕의 이벤트에서 주진모는 ‘동원된 스타’ 이상의 연기적 소득을 얻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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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고해 보면 주진모는 영화사에서 지나치게 ‘소비’되었다. 그의 진중하면서도 선한 캐릭터를 사려 깊고 세련되게 ‘소화’시켜준 쪽은 오히려 영화가 아닌 TV드라마. 트렌디 드라마 <때려>와 <패션 70’s>에서 자신감을 얻은 주진모는, 2006년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서 ‘잘생긴 게 죄’가 아니라는 걸 멋지게 증명해냈다. 바로 미녀를 바라보는 미남의 자연스러운 카리스마로! 브라보! 주진모의 깨끗한 안타였다. 타이밍이 약간 늦긴 했으나, 곽경택 감독이 <친구>의 멜로 버전으로 만들어낸 영화 <사랑>에서도 주진모는 선전했다.
내가 인터뷰를 하기 위해 분장실로 들어서자 주진모는 아편이라도 한 것처럼 의자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사진 촬영을 위해 그가 겪었던 격렬한 감정이 모두 지나가고, 이제는 기진맥진한 가운데 평온한 감정이 생겨난 것이다. “말씀하셨듯이 제가 다른 배우들처럼 영화계의 고속도로를 타면서 이 자리에 오진 못했어요. 처음 했던 드라마도 노희경 작가와 표민수 PD가 만들었던 동성애 단막극 <슬픈 유혹>이었고, 김기덕 감독과 하루 만에 <실제 상황>이라는 작품도 찍었고. 20대 초반에 핫하게 갔어야 했는데, 그때 역으로 거꾸로 남들이 피하는 길로 갔어요. 그때 물꼬의 흐름을 잘 텄으면 어땠을까…, 지난 일이지만 ‘유씨어터’ 3기로 겨우 연극 포스터나 붙이다가 갑자기 영화계로 들어왔어요.
처음 연기적 열정을 느낀 건 <해피엔드>. 스물 네 살에 30대 분장을 하고 ‘강박적인 사랑’을 표현했어요. 참 아쉬웠던 게 그 이후로 찍은 영화에서 감독들은 제가 ‘눈에 힘을 주기를’ 원했어요. 저를 캐스팅한 이유 중 하나가 마스크가 세니까, 어서 그 ‘세기’를 사용하라고. 하지만 전 장동건처럼 <친구>나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대표작을 갖지 못했어요. 제 생각대로 눈에 힘을 빼기 시작한 건 <미녀는 괴로워>부터였어요. 아중이에게 그랬죠. 네가 만화 캐릭터로 잡아서 어색하게 갈수록 내가 릴랙스하게 갈게. 그렇게 힘을 빼니까 전체 톤이 맞고 마침내 관객들도 좋아하시더라구요.
<쌍화점>은 정말 어려웠어요. 유하 감독은 배우의 자존심을 꺾어놓고 처음부터 조련하더군요. 첫 테이크를 갈 때부터 예고된 일이었지요. 제가 시름시름 앓는데, 호위 무사 인성이가 들어와서 죽 시중을 드는 장면이었어요. 그래도 신하에게 왕으로서의 기품을 유지하려는데, 테이크를 끊고 바로 들어와서 그러시더군요. “표정 세니까 눈에 힘 풀고 팔 동작부터 다시 시작해 보지요.” 어느날 집에 가서 보니 새치에 부분 탈모까지 생겼어요. 자존심을 꺾고 처음부터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행복합니다. 생각해보세요. 저는 이제까지 영화계에서 좌충우돌하면서 지내왔어요. 6년 전 계약한 <비천무> 는 2~3년 전 중국에서 갑자기 들어오라고 해서 무려 1년을 촬영했고, <라이어>는 소속사에서 패키지로 묶인 상태에서 출연했고, <실제 상황>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르고 움직이기만 했죠.
그 런데 유하 감독이 제게 <쌍화점>의 선장 역할을 준 거예요. 저는 왕이지만, 또 왕이 아니에요. 왕으로 포장된 똑같은 사내, 똑같은 인간. 권력의 상층부에 있는 인물이지만, 인생살이의 희로애락은 다르지 않아요. 유하 감독이 제게 원한 것도 그런 인물. 스러지는 권력을 가진 보통 남자. 어떤 상황에서든 첫 대사가 저였고, 제가 뼈대를 어떻게 잡아가느냐에 따라 전체 분위기가 결정됐어요. 제가 인간 본성이 숨쉬는 현대적인 질감의 고려왕을 잘 표현했느냐? 영화 선배로 인성이와 지효를 이끌고 잘 갔느냐? 그건 영화에서 보이겠죠. 저는 최선을 다했고, 지금처럼 자신감을 가져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지금 너무나 만족합니다.” 주진모는 <와니와 준하> 를 끝내고 캐스팅이 없어 3년을 쉬었을 때, 차도팔고 빚도 졌다고 했다. 드라마 <때려!>로 나왔을 때, “신인 배우가 연기 잘하네”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주진모의 주위에 심오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는 거울 앞에 앉아 생각하고 또 생각했는데, 그것은 새로운 생각이었다. 그는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완전히 해방된 듯했다. 그는 야망이 있는 멋진 사내였다. 머리와 수염을 기른 얼굴에서 자연스러운 빛이 났고, 몸에서는 테스토스테론이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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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쌍화점>에서 송지효는 고려왕 주진모와 호위 무사 조인성의 ‘동성애적’ 사랑에서 균형을 만드는 이방인 같은 존재이자, 균열을 일으키는 결정적인 존재, 원나라 출신 왕후를 연기했다. 왕과 왕후 사이를 오가며 햄릿의 독백으로 번민하는 사람은 조인성이되, <보그>가 만들어내는 ‘스캔들’에서 조각 같은 두 남자를 견주는 권력은 송지효에게 주어졌다. 조인성과 주진모는 에로틱한 꿀물을 부어대는 붉은 여신의 중재로 남성성을 겨루고, 이 두 명의 아도니스와 나르시스의 얼굴이 겹쳐 드러나는 거울 앞에서 송지효는 구애의 심판관이 된다. 아! 모든 여성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을 만한 역할이 아닌가! 그만큼 송지효는 예뻤다.
게다가 자아가 강한 여배우였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설명되고’ ‘표현되길’ 원했다. 모든 20대 여배우들이 그러하듯이 전도연이나 장진영을 롤 모델로 삼고 있었으나, 사실 두 사람의 차이는 너무 크다. 전도연은 뼛속까지 에스트로겐이 숨쉬는 구체적이고 직설적인 여자고, 장진영은 심장에 테스토스테론의 열정이 고인 남자 같은 여자다. 어쩌면 송지효는 두 여배우의 경계에 서 있는지도 몰랐다. 그녀에게는 ‘내숭’이나 ‘전략’은 없어 보였지만, 두 여배우가 공통적으로 지녔던 내면의 ‘독기’와 ‘진심’이 보물처럼 빛났다.
“처음부터 왕후가 큰 비중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시나리오의 임팩트가 워낙 강했어요. 공민왕과 원나라 노국 공주라는 실화를 모티브로 만들어졌으니까요. 기존의 유하 감독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가 연약했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한 나라의 왕후로 내적인 강함이 두드러질 거예요. 제겐 큰 행운이죠. 캐스팅 순위에 있던 여배우 중에 제가 마지막으로 감독님을 만났어요. 화장도 안 하고 머리를 질끈 묶은 모습으로 갔는데, 그게 더 점수를 땄죠.”
마지막으로 송지효는 왕후다운 기품으로 신비주의의 베일에 싸인 이 영화 <쌍화점>의 베스트 신을 뽑아주었다. “쌍화병이라는 중국 만두를 파는 가게가 쌍화점이에요. 고려 가요 <쌍화점> 가사처럼 제가 누군가에게 만두를 나눠주는 장면이 나와요. 전 그 장면이 따스했어요. 또 하나는 조인성이 왕을 쳐다보는 장면, 그 얼굴엔 이렇게 써 있죠. ‘왕이여, 제게 왜 이런 시련을 주셨나요?’, 그리고 왕 역할의 주진모, 제 서방이 검무장에서 용맹하게 싸우는 장면이 멋있답니다.” 그리고 유하 감독을 대신해 이 ‘스캔들-고려남녀상열지사’의 메시지를 영민하게 풀어냈다. “사랑의 막막함, 사람의 애잔함… 어느 하나 슬프지 않은 사랑이 없고, 누구 하나 사연 없는 사람이 없더라!”
만두 가게에 만두 사러 갔더니 몽골인이 내 손목을 쥐더이다. 이 말씀이 이 가게 밖에 나며 들며 하면(소문나면) 조그마한 어린 광대(심부름하는 아이) 네가 퍼뜨린 말이라 하리라. (다른 여인들이) 그 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그가 잔 곳같이 울창한 곳이 없다. -고려 궁중에서 유행한 외설 가요 <쌍화점> 중에서. |
| - 자세한 내용은 <보그> 2008년 12월호에서 확인하세요! - 에디터 / 김지수 - 출처 / www.vogue.com | |
1 留言 :
Thank you so much for sharing.
He is so handsome and Love Joo Jin Mo alw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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