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5 Vogue - Talking About






배우는 끝없이 선택을 하고 선택을 받는 직업이다. 주진모는 모두가 남성판타지를 자극하는 레트로 블록버스터로 달려가는 지금, 전혀 다른 선택을 했다. 그가 ‘거짓말쟁이’택시 기사로 출연한 영화 <라이어>는 일상을 배경으로 한 사회 풍자라고 할 수 있다.


창문 너머로 불어오는 바람에 흰 커튼이 주진모의 얼굴 위로 나부끼고, 그가 이마에 세 줄의 주름을 넣어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난 ENG 카메라의 빨간불이 끔찍하게 싫습니다. 저 스틸 사진기도 유쾌하진 않습니다. 최민식 선배가 사진은….” “배우의 영혼을 앗아간다고 했나요?” “네. 분명 그랬어요.” “거짓말입니다. 그는 얼마 전 내게 자신이 인디안도 아닌데 왜 그런 말을 했겠느냐고 하던데요?” “이상하군요. 내게 왜 그런 거짓말을 했을까요?”

나는 주진모를 알고 있다. 낚시를 좋아하고(하지만 민물고기는 먹지 않기 때문에 잡은 고기는 전부 놓아준다),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주로 거울을 보고 대화한다), 정직하고 배려가 깊다. “나는 천재가 아닙니다. 엄청난 노력형이죠. 하루 아침에 스타가 된 행운아도 아닙니다.” 그는 군대에서 제대한 후 스물 세 살 때, 무작정 서울의 압구정동으로 갔다. “원당 촌놈이 막연한 꿈을 안고 난생 처음 압구정동이라는 신세계로 갔습니다.” 백수였기 때문에 버스비도 없었다. 그는 유씨어터라는 극단을 찾아가 아무거나 시켜달라고 했고 돌아올 땐 집까지 걸어왔다. “저보다 잘생긴 사람은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직업을 개척했고, 힘들게 여기까지 온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전통적인 공무원 집안이었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불완전한 직업’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전공도 하지 않은 일을 어떻게 하느냐’고 다그치셨어요. 전 ‘할 줄 모르지만 그게 제 꿈이에요’라고 말씀 드렸죠. 저는 꿈을 이룬 겁니다.” <해피엔드> 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고 나서야 아버지로부터 “저놈 배우 하라고 그래”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그동안 자신이 ‘너무 진지했다’는 걸 인정한다. 결혼한 유부녀의 아기용품까지 사놓고 사랑을 갈구하던 <해피엔드>에서의 과도한 집착처럼 그는 지독하게 영화에 매달렸다. 덕분에 영화계 인사들에겐 사랑 받았지만, 대중들에겐 모호한 인물이었다. 하루 만에 촬영을 끝낸 김기덕의 이벤트형 영화 <실제상황>이나 영하 40도의 혹한과 모랫바람 속에서 5개월을 촬영한 <무사> 는 대중들의 취향과 맞지 않았고, 김희선과 ‘동거’한 순정 영화 <와니와 준하>는 흥행 공식에서 비껴 있었다. <비트>의 정우성처럼 <친구> 의 장동건처럼 <말죽거리잔혹사> 의 권상우처럼… 대중들은 ‘청춘의 덫’에서 방황하는 꽃미남의 성장 영화를 원했으니까. “잘생긴 남자 후배들을 보면서, 나도 과거에 저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좀더 트렌디하게 가보지 그랬어요? 김기덕이나 박광수 영화에 일찍 도전했기 때문에….” “네. 그래서 어정쩡한 포지션이 됐습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사는 방식이 있죠. 대중적인 존재감은 드라마 <때려> 정도면 만족해요.”

배우는 끝없이 선택을 하고 선택을 받는 직업이다. 주진모는 모두가 남성 취향의 레트로 블록버스터로 달려가는 지금, 전혀 다른 선택을 했다. <라이어>는 일상을 배경으로 한 사회 풍자라고 할 수 있다. 택시기사 만철은 우연한 사고로 지명수배범 서장원을 체포하지만, 그 때문에 무사하게 꾸려왔던 이중 생활이 들통날 위기에 처한다. 세밀한 시간표를 짜서 두 집을 왔다갔다 하던 일상에 구멍이 생긴 것이다. 주진모는 이 영화에 대해 약간 흥분한 듯했고 말 속도도 느렸다. “그건… 영국식의 탄탄한 소극장 연극을 바탕으로 한… 해프닝 영화지요… 저는 연극 배우로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카메라가 아닌 관객을 향해 과장된 표정과 몸짓을 보여주는 게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뭐죠? “거짓말 소동으로 ‘나는 누구인가’에 봉착하는 이 영화를 통해 배우로서의 나를 자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역을 제안 받았을 때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겉보기에 저는 그런 역에 어울리는 외모는 아니니까요.” 주진모는 다시 버릇처럼 퍼즈를 두며 말했다. <동갑내기 과외하기> 를 감독했던 김경형 감독은 ‘그의 잘생긴 외모엔 아웃사이더의 냄새가 난다’고 했다. “풀어지는 연기를 못하면 진지한 연기도 할 수 없어요. 물론 지금의 주류 영화와는 전혀 다른 선택이지요.”

만철의 치밀한 거짓말 소동을 연기하는 내내, 주진모는 ‘힘을 주면 느끼해지는’ 외모의 딜레마에서 벗어났다. 은근한 유머, 카메라 프레임을 벗어나는 희극적인 몸동작… “예전엔 다섯 발자국 걷다가 카메라를 보고 대사를 친다, 이런 식이었어요. 모든 게 강박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서고 싶으면 서고, 앉고 싶으면 앉았습니다. 아무도 나를 제지하지 않았죠. 그래서 전혀 다른 자유를 누렸어요.” 가끔씩 등장하는 주진모의 연극적인 독백은, 그가 자유롭게 떠벌이다 만나는 일상의 해프닝과 연쇄 반응을 일으키고 관객에게 ‘공모자’의 즐거움을 준다. 이 영화는 재미난 소품이 될 것이다. “당신의 연기관이나 인생관도 변했나요?” “제 좌우명이 뭔지 아세요? ‘책임 있는 말을 하자’입니다. 누군가는 선의의 거짓말이 있다고도 합니다만, 나는 거짓말 자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정치인들은 어떻습니까?” “글쎄요, 그런 거짓말에까지 집중할 시간은 없습니다. 말씀 드렸듯이 나는 천재가 아니고 내 일만 하기에도 벅차거든요.” 그는 또 잠깐 퍼즈를 두고 말을 이었다. “사실 제가 어제 UFO를 봤습니다.” “정말이요?” “네, 정말 아름다운 거짓말이지요?” 그가 가지런한 치아를 빛내며 착하게 웃는다. “제가 좀 밝아 보이지 않나요?” 그는 스스로에게 유쾌한 주문을 건다. “네! 밝아서 눈이 부셔요.” 우리는 같이 웃었다. 그는 <로열 테넌바움>의 벤 스틸러처럼 아디다스 트레이닝 룩 차림이지만, 조금도 불안해 보이지 않는다. 영화 속의 인물과 비슷한 유일한 점은 그도 ‘좀도둑’을 잡을 뻔한 적이 있다는 것. 주진모는 SBS 드라마 <때려>를 촬영할 무렵 거리에서 소매치기를 만났다. 핸드백을 도난 당한 여성이 소리를 지르자 그는 전속력으로 소매치기를 뒤쫓았다. “권투 연습에 재미가 붙을 때였거든요.” 놀란 소매치기가 갑자기 넘어졌고 경찰이 그를 체포했다. 쫓아가던 주진모는 조용히 발걸음을 돌렸다. 그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그가 ‘쿨’하기 보다 ‘순수한’사람이라고 한다. “저는 저와 함께 일하는 주변 사람이 행복한 일만 하고 싶어요. 예전엔 실내에서 혼자 근육을 만드는 운동을 했어요. 지금은 인라인 스케이트, 야구, 축구… 사람들과 몸을 즐기는 운동을 합니다.”

그는 여전히 거울을 본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처럼 까칠한 수염, 모공, 블랙헤드 같은 것이 보인다. 오늘 아침에도 그는 수염을 깎지 않았다. 그는 공백 기간 동안 팔도 강산의 물 있는 곳은 다 돌아다녔다. 낚시를 하고 다시 잡은 물고기를 놓아주면서, 거울 앞에서 “너는 왜 못해?”라고 자학하면서. 아마 그가 배우로서의 가치가 다소 애매해진 데는 그가 자신의 멋진 외모를 과시하지 않고 부끄러워 했기 때문일 것이다. “쌍꺼풀이 진해서 조금만 힘을 주면 느끼해 보여요. 코도 너무 높습니다. 스타일리시한 사람은 많습니다. 하지만 나는 <올드 보이>의 최민식 선배처럼 스타일리시한 연기를 원합니다. 혼자 낚시하면서 칼을 갈았어요. 그동안 난 너무 교과서적인 연기를 했습니다. 슬프면 슬프고, 기쁘면 기쁘고… 나 스스로 너무 불안해서 창조의 에너지를 막고 있었던 거죠. 이제 나를 믿고 깨뜨리고 싶습니다. 물론 틀릴 수도 있지만 다음 기회가 있으니까요.” 그는 일주일 후 한중 합작드라마 <비천무> 촬영을 위해 중국으로 날아간다. 그리고 영화 개봉일에 맞춰 또 들어오고. “휴! 중국은 음식도 심지어 물조차 맞지 않습니다. 촬영은 <무사> 때보다 1.5배는 더 힘들 테고. 다시 칼 잡고 각이 선 연기를 해야 하고. 그래도 흥분됩니다. 좋은 그림이 나올 때까지 더, 더, 더! 사서하는 고생이 즐겁습니다. 정말로.”

에디터 / 김지수 의상 / 김서룡 옴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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